‘검은 리본’ 가득… 초등학교 교사들의 조용한 추모

‘검은 리본’ 가득… 초등학교 교사들의 조용한 추모

기사승인 2023-07-21 06:05:02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담벼락에서 쪽지에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는 시민.   사진=임형택 기자

재직 중인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20대 교사 A씨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각지의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도 추모 화환을 보내고 검은 리본 이미지를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을 바꾸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20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담벼락엔 추모 화환이 가득했다. 전국 각지에서 이름 모를 교사들이 A씨를 추모하기 위해 보낸 화환들이 하나, 둘 담벼락을 채우더니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화환엔 ‘동료 교사 일동’,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죽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 밝혀야 합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인 장모(28)씨는 “교사 커뮤니티에 각종 추모글이 올라오고, 사건 현장인 초등학교와 서울시교육청으로 추모 화환을 보내는 중”이라며 “많은 교사들이 본인의 일처럼 공감하고 슬퍼하며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초등학교 담벼락엔 색색깔의 쪽지들이 붙었다. 추모를 위해 학교를 방문한 교사들과 시민들이 적은 쪽지들이다. 많은 교사들이 사망한 A씨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쪽지에 적었다. “선배 교사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죄송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께 죄송한 마음뿐” “선배교사로서 먼저 알아주지 못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도착하기 전엔 분노로 가득했는데, 도착한 분간 부끄러움이 밀려온다”라며 “선배 교사로서 행동하지 않은 것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날 다수의 초등학교 교사가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검은 리본이 그려진 추모 이미지로 바꿨다. 익명을 요청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동료 교사들 70~80%가 추모 이미지로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며 “교사들 중 절반 이상이 검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 말을 꺼내지 않아도 서로 추모하고 있는 마음을 느끼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인 백모(39)씨는 “오전엔 동료 교사들의 추모 프로필 이미지가 한두 명이었는데, 오후에 확인하니 절반 이상이었다”고 했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19일 밤부터 참담한 심정이 된 교사들이 많았다. 세종시 한 초등학교 교사인 장모씨는 “저와 제 주변 교사들은 어젯밤부터 참담한 심정”이라며 “슬프게도 놀랍게 다가오기보다는 터질 게 터졌구나 싶어 더욱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밤새 동료 교사들과 점차 밝혀지는 소식을 공유하며 분노했고 많은 선생님께서 검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고 전했다. 강서양천교육청 소속 초등학교 교사 B씨는 “사건을 듣고 남 일 같지 않았다”라며 “할 수 있는 일이 기사에 공감 버튼을 누르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에 출근해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다. 대부분 교사가 참담함을 느끼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화환들 사이로 추모하러 오는 교사들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A씨에 공감한다는 반응도 많았다. 많은 교사들이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처럼 느끼고 공감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 선모씨는 “생전에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결국 동료 교사”라며 “저 또한 돌아가신 선생님과 비슷한 저연차 교사라 공감이 됐다. 악성 학부모와 문제 학생들로 무기력이 만연해진 교직 생활이 결국 이렇게 터졌구나 하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참으며 쌓아둔 목소리가 이제야 나오는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 장모(28)씨는 “학생 인권만 지나치게 보호받는 현실”이라며 “이미 만연한 교권 추락 문제가 이제야 수면 위로 드러나 처음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꽃다운 목숨을 저버리면서 장소를 굳이 교실로 하신 것엔 분명히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라며 “업무 환경이 부당해도 ‘그래도 교사는 방학이 있으니까’, ‘정년 보장된 철밥통이니까’, ‘누가 칼 들고 교사하라 협박했냐’란 얘길 들으며 꾹꾹 참던 교사들도,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교사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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