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가 세상을 등진 뒤 교권 침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현직 교사와 교장 등 교육계와 정치권이 만난 자리에서 교권·인권이 침해당해도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현재 시스템과 정책 부재에 대해 성토를 쏟아냈다.
교원단체들도 아동학대법 등 법안 개정과 민원 창구 개설 등 교원들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촉구하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다만 당정이 추진하기로 한 학생인권조례 개정과 교권 침해 행위 생활기록부 기재와 관련해서는 의견 차이를 보였다. 2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토론회에서 이같은 논의가 진행됐다.
“목 X겠다” 학부모 막말
“정상적이지 않은 교실, 돌아가기 두렵다”
현직 교사와 교장 등 교원들이 밝힌 교권 추락의 원인은 한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특히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교육활동의 어려움을 반복적으로 토로했다.
6년차 서울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는 “항간에 떠도는 ‘진상 학부모 체크리스트에 짧은 교직 기간 겪은 일들이 포함돼 놀랐다”며 “‘우리 아이 아빠가 화났다’ ‘핸드폰 번호 알려달라’ 등은 이젠 민원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고 느낄 정도로 학교 현장에 만연한 민원들”이라고 말했다.
구영철 한국초등교장협의회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광주에서 교사들이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을 학교장이 별실에서 지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안 좋은) 행동하면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정서적 학대로 신고받아 지자체와 경찰 조서를 받은 사례가 있다”며 “(학부모들의) 고발 대상은 교사뿐만 아니라 교장, 교감에게까지 무차별하게 이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천 한 중학교 교장 정모씨도 지난 학기 학부모 민원으로 고통받는 교사에게 내용을 전달받았다. 정씨는 해당 학부모와 40분간 전화 통화를 하면서 “목을 X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 정씨는 “지난해 학생 잘못으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었는데, 학생의 학습권이 우선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던) 학생은 교실에 남고 선생님이 분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다른 학생들에게 너무 큰 피해가 되지 않나. 학생의 학습권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나머지 학생들이 담임교사·교과교사의 수업을 듣지 못하는 매뉴얼은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원초등학교 교사 고요한씨는 “교실은 더 이상 정상적인 교육환경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며 “근본적으로는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는 구조적 시스템과 법들이 한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라고 지적했다. 고씨의 발언 중 일부 교사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곧 학교로 돌아간다는 28년차 교사 박성욱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정책실장은 “학교로 돌아가기가 두려워졌다”라며 “교사가 안심하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학부모 민원 창구 단일화 등 한목소리
생기부 기재·학생인권조례 개정은 의견 엇갈려
이날 교원단체들은 각각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이들은 △학부모 민원 △아동학대 고소 및 협박 △수업 방해 △인권 침해 등을 교권 침해 사안으로 꼽았다.
이들은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해 학부모 민원 창구를 단일화하고 교사 개인 전화번호를 비공개해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고 입을 았다.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학교폭력 업무 교원에 대한 면책권을 포함한 학교폭력예방법과 아동학대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 등 법률 개정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교육부 고시에 교사 생활지도권 명시 △악성 민원인에 대한 교육감 고발제도 △교육활동 방해 학생의 즉시 분리 조치 △교내 아동 정서행동지원 전문가 배치 등을 제안했다.
전날 여당과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교권 침해 생기부 기재 방안과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김동석 한국교원총연합회(교총) 교권본부장은 “학급교체, 강제 전학, 퇴학 등 중대한 부분은 학생생활기록부에 교권 침해 가해 사실로 기록해야 한다. 외국 역시 징계 사안을 학생부에 기록한다”며 “학생인권조례의 재정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현승호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의 인권을 ‘제한’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권을 ‘보호’해달라는 것”이라며 “(생기부 기재 역시) 교권 침해를 당한 후에 스스로 다시 떠올리며 생기부에 기재하기를 원하지 않는 교사가 많다. 또 각종 생활기록부 취소 소송과 고발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기부에 교권 침해 사안을 기록하는 일, 상벌점제도 부활 시 벌점을 부과하고, 부모에게 문자 보내고, 문의 전화를 받는 일 모두 교권 침해를 당한 교사 본인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소영 전국초등교사노조 정책국장은 “생기부 기록 찬반 논란,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 등 갈등만 일으킬 뿐”이라며 “생기부 기록보다 중요한 건 교사의 평가권 보장이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반비례하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전교조 박 정책실장도 “금쪽이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고 금쪽이가 안 되나”라며 “그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인력이나 지원이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에 질문 쏟은 교원단체들
교육부 “실효성 있는 학생생활지도 고시안 만들 것”
이날 토론회에선 주로 교육부에 화살이 집중됐다. 전교조 한 관계자는 교육부 최근 자료 중 실효성 있는 학부모 교육을 위해 ‘매년 1회 학부모 교육’을 실시한다는 부분을 지적하며 “교육부는 전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가 대책 발표를 약속한) 8월 정책도 기대하지 않는다. 현장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교사들도 교육부를 겨냥해 “학생생활지도 고시안을 8월 말까지 어떻게 만들 건가” “고시안을 만드는 과정에 현직 교사들의 목소리를 생각은 있는건가” 등 질문을 쏟아냈다.
고영종 교육부 책임교육지원관은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교육부의 추진 사항이 “이전보다 진전하고 있다”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 때문에 정당하게 수업받지 못하는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받지 않는 등 내용이 반영되도록 다음달까지 실효성 있는 고시를 만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동학대 관련) 교사 특수성을 고려해 수사 개시 요건을 더 엄격하게 하고자, 수사 개시 전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국회에 요청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