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라 일컫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선 규제 완화를 멈추고 안전성, 유효성을 엄격히 평가해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24일 국민일보와 쿠키뉴스가 주최한 ‘2023 미래의학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가 자칫 생명보다 이윤을 먼저 챙기는 디지털 예외주의에 치우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정책국장은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헬스에 대한 기대와 낙관적 전망들이 범람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는 단지 의료와 건강관리에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가 늘어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사회적 효과를 낳는다”며 “의료 행위에 있어 영리기업의 참여, 사회경제적 차별 심화, 기업의 개인정보 축적 등 부정적 수단이 되기 쉬운 반면, 건강 향상에는 대체로 도움을 주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디지털 헬스 기술들은 대개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 전통적 규제 장벽을 통과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 결과와 근거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기업들은 디지털 헬스의 특수성을 거론하며 기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검증 규제와 다른 별도의 트랙과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기존 규제 대상에서 예외 돼야 한다는 소위 ‘디지털 예외주의’ 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지난 7월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보고안건으로 처리한 ‘디지털 치료기기·인공지능 임시등재 방안’을 문제로 지목했다. 해당 방안은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를 통해 디지털 치료기기나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혁신성이 확인되면 비급여 혹은 건강보험을 일부 적용받아 임시적으로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수가나 보험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의료기술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기술적 성능검증을 하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안전성, 유효성을 평가해 근거가 있으면 진입시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비용효과성을 따져 건강보험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임시등재 방안은 유효성 등 임상적 근거 마련을 위해 의료기관에서 우선 활용이 필요한 점을 고려해 최대 3년간 건강보험에 임시등재하고, 이후 의료기술평가 등을 거쳐 정식등재 시에 급여 여부 및 수가를 최종 결정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시장 ‘선진입-후평가’라고 부른다. 시장에 진입해 일정기간 근거를 쌓고, 평가에 따라 시장에서 퇴출될지, 정식 보험 적용을 받을지 결정되는 것이다.
전 국장은 “디지털 헬스기기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고, 오진단을 일으킬 우려가 높다. 또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건강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새로운 치료옵션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작용해 의료 상업화나 환자 부담을 증가시킬 우려가 높다”면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의료인과 의료기관, 기업, 환자 사이 불분명한 책임 소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 규제 당국은 기계적 정확성 검증도 하지 않고 있다. 혁신의료기술 평가 트랙으로 과학적 검증이나 근거 확인도 충분치 않은 채 허가가 이뤄지는데, 임시등재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써보고 효과가 있으면 정식허가를 준다는 건데, 효과가 없는 제품을 사용해 온 환자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인가”라고 피력했다.
그는 의료기술 규제가 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인 만큼 엄격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 국장은 “디지털 치료기기나 인공지능 의료기기는 접근이 어려워 논의가 전문가들에게만 맡겨져 있다 보니 의료기술 검증에 대한 중요한 규제가 산업계 바람대로 점점 완화되고 있다”며 “평범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진정한 의미의 기술발전을 위해 규제는 더욱 엄격해야 하고 신기술일수록 제대로 된 인증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위험한 규제 완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