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법제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앞장 서 비대면진료 사업을 이끌던 플랫폼들이 하나둘 사업을 접으면서 서비스 시장이 위축되는 모습이다.
앞서 썰즈, 파닥, 체킷, 바로필 등 다수의 플랫폼이 비대면진료 서비스를 종료하고 운영을 접거나 사업 전환을 꾀했다. 비대면진료를 통해 매출을 얻을 수 있는 실질적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5월 일평균 5000건에 달하던 비대면진료 요청 건수는 6월 4100건, 7월 3600건, 8월 3500건으로 감소세를 그렸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 A씨는 “비대면진료 서비스가 축소되면서 사용자를 늘릴 수 없게 된 기업들이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현 비대면진료 시스템으로는 의사도, 환자도 만족하지 않아 수요가 계속 줄고 있다. 이대로라면 비대면진료를 제공하는 곳은 극소수만 남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24일 비대면진료를 법제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6건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됐지만 1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플랫폼 업체가 약 배송을 대신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과 수가를 조정하는 방안, 중개매체 신고제 등 다양한 개선책들을 제시했지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제1법안소위원장인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대면진료는 초진 처방, 무분별한 약 처방 등과 같은 부작용들이 많아 해결책을 찾고 법제화하려면 논의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간 편의성 등을 내세워 시장의 지지를 얻었던 플랫폼 업계에 대한 시민단체의 시선도 곱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이 포함된 환자단체와 보건의료노조는 영리 플랫폼 허용은 의료 상업화 부작용을 일으킨다며 공공 플랫폼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부당청구 등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줄 것이라며 법제화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비대면진료에 의한 과다 진료나 약물 남용 조장 우려가 언론이나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법제화를 추진해선 안 된다”며 “민간 플랫폼 기업들은 환자, 의료기관, 약국 중개를 빌미로 돈을 벌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처방 등의 문제에 대해선 등을 돌릴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계도기간이 이달 말 종료되면 행정 제재가 강화될 전망이다. 정부가 정의했던 ‘재진 중심’, ‘약 배송 금지’ 메뉴얼이 효력을 가지면서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이 이어진다. 복지부 콜센터 ‘불법 비대면진료 신고센터’까지 설치돼 플랫폼 업계의 부담은 커져만 가고 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관계자 B씨는 “현재 시범사업 가이드라인대로라면 법제화가 된다고 해도 나아질 게 없다. 업계도 의약계가 말하는 것처럼 원점에서 논의하길 바란다”며 “초진·재진 대상자를 나누고, 약국과 연계해 약 배송을 할 필요가 있다. 함께 논의해서 상생할 방안을 찾아야지 배척만 하면 안 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원격의료학회가 비대면진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면서 초진·재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한 점, 약 배송 필요성을 언급한 점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복지부는 비대면진료 법제화 추진 의지는 분명하며, 의약계가 주문하는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 안전성 문제를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대부분의 플랫폼 업체가 시범사업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환자의 안전성과 의료접근성을 고려해 의료 현장의 혼란이 최소화될 수 있는 시범사업 개선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며 “법적 근거가 조속히 마련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와 적극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