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청년허브가 지난 22일과 29일에 걸쳐 ‘2023 글로벌 솔루션 랩 웨비나’를 개최했다.
글로벌 솔루션 랩 웨비나는 기후 위기, 고립과 은둔 등 청년의 삶의 문제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솔루션 기반 지식 교환 세미나로, 지난 2021년 이후 매년 진행되고 있다. 올해는 ‘능력주의와 공정성’, ‘AI와 일자리의 미래’, ‘일의 지속가능성’, ‘돌봄의 재구성’과 같이 청년의 현재와 미래의 삶과 밀접하고 관심이 높은 4가지 주제를 선정해 9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 22일 개최된 글로벌 솔루션 랩 웨비나는 일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진행됐다. 최근 TV 프로그램 ‘알쓸별잡’에서도 소개되며 화제가 된 ‘가짜 노동’의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가 기조 발제를 맡았다.
뇌르마르크는 산업혁명 이후 눈부신 기술의 진보를 이뤄낸 인류가 왜 지금도 여전히 평균 하루 8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가짜 노동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뇌르마르크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가짜 노동은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않은 채 주로 누군가의 업무를 규율·관리·감독하는 업무, 이를테면 컨설팅, 연구조사, 시장분석, 품질보증, 관리, 평가 등의 사무직 업무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그는 제조업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산업이 이동하면서 경영 및 감독을 담당하는 사무직 업무의 비율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 중 많은 업무가 실제 생산성과 크게 상관이 없는 ‘허위 노동’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런 가짜 노동을 줄이면 노동시간을 주 15시간까지 획기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반적인 노동 생산성과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주4일제를 도입한 아이슬란드의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기조 발제 후 토론에 나선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노동시장이 갖는 고유한 맥락과 특징 속에서 가짜 노동이 갖는 시사점을 설명했다. OECD 평균보다 연간 199시간 더 긴 노동시간 및 그에 비해 매우 낮은 노동생산성(38개국 중 27위) 등의 지표들을 보여주며 만성적인 초과근무와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짚었다. 특히 지금의 청년 세대가 갖고 있는 일-생활 균형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성별 불평등과 저출생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지적하며, 지금의 청년 세대들이 일의 의미를 느끼면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기업을 비롯해 정책, 제도, 인식과 가치 전반의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어 29일 열린 두 번째 글로벌 솔루션 랩 웨비나는 돌봄의 재구성을 주제로 진행됐다.
기조 발제를 맡은 캐나다 요크대학교의 제니퍼 네델스키 교수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입증한 것은 누군가의 돌봄 없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며 “돌봄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사회에서 저출생, 고령화의 근원적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원칙과 지향으로 “모든 시민이 일주일에 주 20~25시간의 돌봄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런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주 30시간 미만의 시간제로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뜻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이지만, 그는 “이미 많은 요소가 여러 국가, 특히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다”며 시간제 노동 종사자가 47%에 달하는 네덜란드의 세계 최초 ‘시간제 경제’ 실현 사례를 소개했다.
토론에서는 함선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네델스키 교수의 이런 주장이 한국의 청년들에게 갖는 함의를 제시했다. 특히 1인 가구 청년 비율이 급속히 늘어나는 현상을 짚으며, 경쟁적이고 불안정한 노동 시장의 구조 속에서 가족을 구성해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등 돌봄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청년 세대의 각박한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1인 가구, 저출생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돌봄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앞으로는 가족의 형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돌봄을 제공하고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네델스키 교수가 제안했던 ‘의무 돌봄제’와 같은 상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총 4회에 걸쳐 진행된 글로벌 솔루션 랩 웨비나에는 주도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이슈에 주목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청년, 연구자, 정책관계자, 기업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가해 열띤 질문과 토론으로 함께했다. 참여자들은 ‘한국 청년들이 직면한 상황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던 부분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계기였다’, ‘미래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져줘 관점이 확장됐다’, ‘현실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라 가슴에 와닿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편, 서울특별시 청년허브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을 위해 역량 강화 지원, 청년 네트워크 연결, 청년 의제 발굴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