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반발 예견됐는데”…의대 ‘2000명 증원’ 강행

“의사들 반발 예견됐는데”…의대 ‘2000명 증원’ 강행

기사승인 2024-05-14 06:05:02
3월26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2000명 증원은 전공의와 학생은 물론 전체 의사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부가 지난 2월6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을 발표하기 약 1시간 전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에서 2000명이라는 구체적 증원 규모가 처음 제시되자 당시 참석 위원이 한 말이다.

이 보정심 위원은 의대 2000명 증원이 불러올 파장을 우려했지만 정부는 이를 묵과했고 결과적으로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이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주 2000명 증원의 효력 정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법원의 결정을 앞두고 있어 정부와 의료계 간 공방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2000명 증원, 폐교된 서남의대 20개 이상 만드는 것”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이날 오전 정부가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자료 47건과 별도 참고자료 2건 등을 대중에 공개했다. 이 변호사는 의대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집행정지 신청을 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의대생, 전공의들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다. 

법원은 최근 정부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근거와 회의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0일 법원의 요청에 따라 관련 근거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증원 규모가 합당한 절차를 거쳐 도출됐는지를 놓고 정부와 의사단체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지점은 2000명 증원 숫자를 결정한 2월6일 보정심 회의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보건의료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기구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며 보건의료 전문가와 정부 위원 그리고 노동자, 소비자, 환자단체 등이 추천하는 수요자 대표, 의료단체가 추천하는 공급자 대표 등이 참여한다.

4월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당시 보정심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전체 25명의 위원 중 23명이 참석해 이 중 4명이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날 회의에서 A위원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지금 이렇게 대규모로 의대 정원을 늘리면 폐교된 서남의대를 20개 이상 만드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폐교한 종합대학인 서남의대는 의료계가 제시하는 대표적 부실 의대 운영 사례다. 당시 서남의대 재학생들은 전북의대와 원광의대로 편입학해야 했다.

A위원은 “우리나라 의대들이 제대로 의대생을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의견처럼 350명 정도에서 발휘할 수 있다”라며 “결국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의사들을 양산해 국민 건강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2000명 이상 4000명까지 교육할 수 있다는 의대별 수요조사 결과는 등록금 수입을 올리고 학교 평판을 좋게 하려는 대학 이사장과 총장의 결정”이라며 “전공의와 학생은 물론 전체 의사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파업과 동맹휴학으로 자신들의 뜻을 표현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덧붙였다.

B위원도 “미래 의료 수요 등을 감안했을 때 상당 규모의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솔직히 2000명은 너무 많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과 함께 마련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의료현장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부터 확인하고 증원을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B위원은 “급격하게 2000명을 증원했을 때 이후에 얼마나 조정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500~1000명 정도 증원하는 게 맞다고 보며, 1000명을 증원한다면 이후에 정책·수요 평가 등을 거쳐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C위원은 “의약분업 당시부터 줄어든 정원 등을 고려했을 때 증원 규모는 500~700명 정도가 최대치”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일방적 증원 규모 발표에 불쾌감도 드러냈다. C위원은 “2000명 증원에 대해 전문위원회나 토론회를 주최하지 않고, 회의가 끝난 다음에 증원 규모가 2000명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될 것인데, 보정심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대한의학회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의 근거 및 과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도대체 2000명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

의사단체는 보정심 위원들이 정부 정책의 거수기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며, 의대 증원이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결정됐다고 반발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검증하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전의교협과 대한의학회는 지난주 과학성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9일부터 의대 증원의 근거가 된 3가지 보고서를 포함한 정부의 자료를 검증했다고 전했다. 검증에는 통계학 전문가, 보건정책 전문가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김 회장은 “정부는 수천 장의 근거 자료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기존 보고서 3개를 인용한 주장 외에는 없었다”면서 “세 문장이면 끝나는 근거가 전부였다. 기존 보고서 재탕 외에는 재판부가 석명으로 요청한 증원 결정을 위한 새로운 객관적 용역이나 검증은 전무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없이 많은 회의를 했다고 했으나 2000명을 증원한 근거는 없었고, 2월6일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다며 시급히 진행한 보정심에서 (2000명이란 숫자가) 유일하게 언급됐다”며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객관적 숫자인가”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2000명 증원을 첫 언급한 것은 보정심이 맞지만 그 이전부터 관련 자료가 공유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단 입장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통해 “구체적으로 2000명이라는 숫자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2035년에 의사 1만명이 부족하다는 연구자료는 이미 여러 차례 공개됐다”면서 “당시 500명, 1000명, 1500명, 2000명, 3000명 등 숫자들이 계속 언론으로 보도가 됐다. 충분히 2000명 가까이 증원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응수했다. 아울러 그는 “법원이 의대 정원 증원 집행 정지를 인용할 경우 즉시 항고해 대법원 판결을 다시 신속하게 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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