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임기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여야 대립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보건의료 관련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그간 법 제정을 위해 해왔던 노력과 논의들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22대 국회에서 입법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24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정쟁이 계속되며 상임위원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오는 29일 현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법안들은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간호법 제정안 △공공의대 설립법 △지역의사 양성법 △국민건강보험공단 특법사법경찰권 부여 관련 법률안(건보공단 특사경법) △비대면 진료 허용을 주요사안으로 넣은 의료법 개정안(비대면 진료법) 등 보건의료 법안들이 해당된다.
간호사들 “간호법 제정 안 하면 정부 시범사업 보이콧”
간호법은 의료공백 사태를 겪으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간호사들이 21대 국회에서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정부가 진행 중인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보이콧’ 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은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등에 따른 전공의 사직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지난 2월부터 실시 중인 사업이다.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이 검사와 치료·처치, 수술, 마취, 중환자 관리 등 의사 업무를 일부 대신할 수 있도록 기준을 새로 제시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간호사의 처우 등을 개선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해 4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그 해 5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본회의에서 재표결을 진행했으나 통과 요건을 넘지 못하며 폐기됐다. 이후 복지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를 겪으면서 이들의 업무를 대신하는 PA 간호사를 법제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이를 위해 지난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 여야 간사단에 간호법 수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여야가 날선 신경전을 이어가며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23일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전국 간호사 간호법안 제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약속한 시간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고, 간호사들은 오늘도 위기의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며 “22대 국회가 열리고 의대 증원이 부른 의료 상황이 해소되면 간호사들은 다시 범법자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과중한 업무와 불법에 간호사들이 내몰리는 열악한 현실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며 “국민에게 촘촘하고 세밀하게 의료와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해선 즉각 간호법안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법이 폐기될 경우 간호사들의 집단행동도 예상된다. 간호사들까지 단체행동에 나서면 의료 현장의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일축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2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간호사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데 간호사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작년에 간호법 거부에 따라 간호사분들이 실망했을 때도 진료 거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만들도록 하겠다”며 “21대 국회에서 안 되면 22대에서라도 제도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건보공단 “22대 국회 개원 시 특사경법 재발의”
건보공단의 숙원인 특사경법도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특사경법은 사무장병원이나 면허대여약국 등 불법 개설 요양기관을 근절하기 위해 건보공단 임직원에게 특법사법경찰 권한을 부여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큰 원인인 불법 개설기관을 척결하기 위한 건보공단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특사경 도입은 수년째 요원하다. 건보공단 집계에 따르면 불법 개설기관이 당국에 부당 청구해서 빼간 건보 재정은 15년간 3조37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불법 개설기관 64곳이 건보 곳간에서 2520억8200만원을 부당하게 타냈다가 적발돼 환수 결정 조치를 받는 등 매년 불법 개설기관의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건보공단은 불법 개설기관으로 의심돼 현장 조사에 나서더라도 수사권이 없어 계좌 추적이나 공범으로 추정되는 관련자들을 직접 조사할 수 없는 등 혐의를 입증하는 데 한계가 많다는 입장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의료계의 반대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2일 성명을 통해 “공단은 가입자 및 피부양자의 자격 관리, 보험료 부과와 징수, 보험급여 관리·지급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공급자인 보건의료기관과 대등한 관계를 갖는다”며 “보건의료기관에 대한 행정조사나 검사 업무 등을 공단에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보험자와 공급자의 관계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건보공단은 21대 국회에서 특사경법이 폐기돼도 22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한단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22대 국회 개원 시 신속히 특사경법안을 재발의하고, 연내 법안 통과를 목표로 전사적 역량을 결집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22대 복지위·법사위 국회의원들에게 법안 도입의 필요성 등을 집중 설명할 것이며, 국민적 관심과 여론 환기를 위한 홍보도 강화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의협 등 이해관계자와 쟁점 해소를 위한 협의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됐거나, 본회의와 법사위에서 계류된 채로 폐기된 법안, 총선 핵심 공약 법안 등을 22대 국회 개원 직후 우선적으로 처리한단 방침이다. 최근 열린 당선인 워크숍에서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공개한 총 56건의 입법과제엔 간호법, 지역의사제 등이 포함됐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