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징비록은 조선시대에 여러 판본으로 간행돼 널리 유통됐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져 1695년에는 일본판 조선징비록이 발행되기도 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활자본(8권본)과 1647년 무렵에 간행된 목판본(16권본), 그리고 1894년 옥연정사에서 간행한 목판본(16권본) 등이다. 목활자본은 고서만 일부 남아 있고 1894년 간행 목판본은 고서와 책판이 모두 남아 있다.
진흥원이 발굴한 책판은 1647년 무렵 제작한 것으로 그동안 낱장 몇 장만 전해졌을 뿐이다. 이 책판은 류성룡의 외손자인 조수익(趙壽益, 1596∼1674)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판각 작업을 시작해 제작한 것이다. 문경에서 보관돼 오던 것을 5월 초 청주정씨 정봉진 가문에서 기탁했다. 간행 관련 기록은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지은 운양잡록(雲陽雜錄)에 수록돼 있다.
진흥원은 현재 소장 중인 1894년 옥연정사 간행 책판(16권본)과 비교한 결과, 두 책판의 권차는 동일하지만 형태가 확연히 다름을 밝혀냈다. 17세기 중반 책판의 형태적 특징, 마구리 부분의 판각법 등으로 미뤄 이번에 발굴한 책판은 1647년 무렵 새긴 책판으로 봤다. 또 당대 판본과 비교해보면 책판의 마모와 계선(界線) 및 획의 탈락, 판심 부분의 어미(魚尾) 모양 등이 일치하는 것을 통해 그 근거가 더욱 명확하다고 밝혔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책으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위기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과 함께, 목판의 제작을 통한 문헌의 보급이 그 바탕에 있다”며 “이번에 발굴한 책판 209장은 징비록의 출판 인쇄사와 목판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이다”고 말했다.
안동=권기웅 기자 zebo1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