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 한도를 낮추려 했다가 시행 일주일 전 돌연 연기했다. 7월1일에 맞춰 준비 막바지 단계에 들어갔던 은행들은 혼선을 겪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스트레스 2단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연기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은행들은 당초 정해진 일정인 내달 1일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위해 전산 작업을 거의 마친 상황이었다. 금융당국과 은행 간 사전 교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우리도 기사 보고 알았다”면서도 “그동안 해온 전산작업 시행을 미뤄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사전에 당국과 유관부서 간에 내용이 공유된 것은 아닌 걸로 안다”고 했다.
스트레스 DSR 2단계 기존 일정에 맞춰 준비한 광고 문구를 수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한 시중은행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좁아지는 7월 대출문 미리 대비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대출가능금액 알아보기(DSR 계산기)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등으로 연동되는 알림창을 모바일뱅킹 앱 첫 화면에 띄웠다. 이후 뒤늦게 7월을 하반기로 수정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2월 스트레스 금리(1.5%)의 25%만 적용하는 1단계를 시행하면서, 7월부터는 스트레스 금리 50%를 적용하는 2단계, 내년 1월부터는 100%를 온전히 반영하는 3단계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 등을 이용하는 차주가 대출 이용기간 중 금리상승으로 인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상승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DSR 산정 시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하는 제도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이날 2단계 도입일을 9월로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존 0.375%(하한금리 1.5%의 25%)의 스트레스 금리는 2개월 더 연장됐다. 내년 초부터 시행 예정이던 스트레스 DSR 3단계 조치도 내년 7월로 잠정 미뤄졌다.
당국은 대출 규제 시점을 연기한 이유로 크게 2가지를 들었다. 내달 발표되는 서민·자영업자 지원 범정부 정책에 발을 맞추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연착륙 과정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방침”이라며 “업권별·유형별 가계부채 증가 추이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빌리고(빌려주고) 처음부터 나눠 갚는’ 대출 관행이 확립될 수 있도록 금융권과 함께 제도개선 등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당국의 급작스러운 연기 결정에 금융권에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쨌거나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유예기간이 2달 생긴 셈이니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면서 “물론 당국이 크게는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큰 방향성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도 어려운 소상공인이나 취약계층에 피해가 가면 안 되지 않나. 여러 가지 다각적으로 검토를 해서 내린 결정 같다”고 평가했다.
이유가 다소 궁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위가 든 이유가 사실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부동산 PF와 개인대출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