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리셀’ 화재로 열폭주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폐배터리를 처리하는 업체들도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폐배터리 시장은 주로 영세업체들이 운영하는 데다 규제 기준이 없어 화재 발생 시 더 큰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7일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에서는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가 어떤 전지를 취급하는지 구분하지 않고 있다. 전지마다 조금씩 특성이 다르지만 이를 구분하지 않고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들은 아리셀 공장 화재의 원인이 된 리튬전지와 알칼리·망간 전지 등 다양한 종류를 다룬다. 재활용 업체들은 주로 배터리를 파쇄하거나 분쇄한 이후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추출해 이를 재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가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연쇄적인 폭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전지의 종류에 따라 특정 발화 온도나 습도에서 공기와 접촉했을 때 자연 발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업체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이번달 기준 전국의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는 21곳이지만, 이는 환경부에 폐기물 재활용 업종 등록을 위해 신고한 업체에 한정된다. 영세업체의 경우에는 업종 등록 신고를 하지 않고 폐배터리를 다루고 있을 확률도 큰 상황이다.
폐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폭발 가능성에 비해 방지 대책은 미비한 만큼 기준과 규제를 통해 영세업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폐배터리 보관 시 온도, 습도를 어떻게 맞춰야 한다는 기준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업체마다 파쇄·보관·관리 방법이 제각각인 만큼 기준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폐배터리는 계속 늘어날 일만 있는데,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화재 위험에 계속 노출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폐배터리 관련 화재 코드를 신설하고 발화 원인 파악 및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 의원실이 제공한 ‘폐배터리 재활용공장 화재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화재는 별도로 분류되지 않았다.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별도 구분 코드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폐기물 재활용시설’, ‘폐기물처리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로 묶여 통계가 잡히고 있다.
이에 따라 소방당국은 폐배터리 관련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원인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9일 충남 공주시 우성면 한 고물상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해 소방당국은 폐기물 속에 있던 폐배터리가 손상돼 발화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같은달 18일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한 폐가구 야적장에서 발생한 화재 역시 폐가구 더미에 있던 리튬폴리머 배터리팩이 직사광선에 장시간 노출돼 폭발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했다.
정부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리튬이 물, 화기, 점화원 등과 접촉되지 않도록 하는 보관 및 관리 현황 △화재 발생에 대비한 적정 소화설비 설치 및 대피 훈련 실시 등을 지도·점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소방 당국도 위험성을 감안해 지방자치단체 필요 시 조사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지만 지자체에서는 별도의 요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