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파업의 장기화로 대형 병원들이 경영난을 겪으며 간호사 신규 채용을 미루자, 간호대생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13일 기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23곳 중 강북삼성병원과 중앙대병원 단 두 곳만이 신규 간호사 채용을 완료한 상태다. 9개 병원은 내년도 신규 채용을 계획하고 있지만, 나머지 12개 병원은 여전히 채용 일정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이번 의료 파업의 장기화는 병원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대형 병원들은 파업으로 인해 주요 진료가 중단되면서 수익이 크게 줄어들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 4월24일부터 한 달간 113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52개 의료기관이 비상 경영을 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 47곳 중 35곳이 비상 경영을 선포했다. 이처럼 대학병원과 수련병원에서는 의사들의 진료 거부로 인해 환자 수가 급감했으며, 수익이 감소해 추가 인력 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간호대학생, 취업 시장 위축에 좌절감 느껴
간호대학생들은 일반적으로 4학년 1학기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한다.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등을 거쳐 4학년 2학기에 취업을 확정하고, 다음 해 2월에 국가고시를 치른다. 하지만 의료파업으로 올해 5월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채용이 지연되고 있다.
대한간호대학학생협회가 6월26일부터 30일까지 간호대학생 18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간호대학생의 81.1%가 “취업 시장의 위축을 매우 심각하게 느낀다”라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82.5%가 ‘2024년 상반기 대학 병원 신규 간호사 채용 지연’에 대해 어학 점수와 면접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37.7%는 국가고시 준비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4년 동안 간호사 꿈만 꾸고 달려왔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김지혜(24·가명)씨는 올해 2월에 간호학과를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하지 못한 상태다. 김씨는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면허증까지 땄는데, 정작 입사할 곳이 없어서 한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면서 “간호조무사들과 같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데, 대학병원에서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막막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로컬 병원에 취업하려는 친구들도 많지만, 대학병원을 기다리는 간호사들을 채용하는 병원이 적어서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간호학과 4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인 이지아(24·가명)씨는 “5월부터 채용이 시작되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일부 병원에서 공고가 올라오고 있다. 지원하고 싶었던 병원들은 채용 계획조차 없어서 답답하다”고 밝혔다. 이어 “보통 대학병원들의 경우 채용이 1년에 한 번 이루어져서 이번이 올해 마지막 취업 기회인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내년에 취업이 더 어려워질까 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취업 대신 다른 진로 고민하는 학생들
이런 불안한 상황 속에서 간호대학생들은 대학병원 취업 대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대학원 진학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 해외 취업 등 다양한 경로를 고민하고 있다. 김유림씨(23·가명)는 내년 2월 간호학과를 졸업할 예정이다. 김씨는 대학병원 취업을 포기하고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채용이 계속 연기되다 보니, 이제는 해외 취업까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간호학과 취업난이 언제 해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종합병원이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에서 경력을 쌓은 후, 해외로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싶었지만, 현재 취업 환경이 너무 불안정해서 결국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주현정 가야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희망하는 대학병원에서 채용되지 않아 휴학하거나 해외 취업을 모색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간호직 공무원이나 간호교사 등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는 학생들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파업이 종료되고 병원 운영이 정상화되면 채용이 다시 원활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는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