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찾은 잠원한강공원에서 색다른 풍경을 접했다. 여기저기 놓인 빈백에 자리 잡은 사람들 손엔 저마다 읽을 책이 들려 있었다. 날씨가 좋으니 저마다 야외로 독서 소풍이라도 나온 듯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은 여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책에 열중했다. 매체로만 접하던 독서 열풍이 눈앞에 보인 순간이다.
요즘 서점가는 ‘한강 효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서다. 침체된 출판시장도 모처럼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책 한 권 사려고 ‘오픈런’(인기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개점 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행위)이 빚어지더니 도심 곳곳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최근 구매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판권지에 초판 120쇄 발행이 적힌 사진이 올라와 화제였다. 책이 너무 많이 팔리다 보니 교보문고가 소규모 서점과 상생을 위해 당분간 한강 작가의 책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다.
한강 신드롬으로 들썩이는 현실과 달리 TV 속 콘텐츠는 영 다른 길로 역행하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 6는 한강 작가의 인터뷰를 ‘패러디’하다 뭇매를 맞았다. 한강 작가를 다룬 방식이 무례한 게 문제였다. 대역을 맡은 배우는 시종일관 구부정한 자세로 실눈을 뜨고선 나긋한 말투를 과장해 표현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묘사에 불쾌감을 표하는 반응이 이어지자 해당 배우는 SNS 댓글란을 폐쇄했다.
‘SNL 코리아’는 무엇을 의도한 걸까? 풍자라 하기엔 풍자할 대상이 아니고, 패러디라 하기엔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엔 꼬집거나 의의를 제기할 요소가 없다. 심지어 문학계가 그토록 염불을 외던 노벨상이다. 그간 ‘한국어가 번역하기 어려워 고배를 마셨다’던 자기위로를 깬, 실로 기쁜 이변이지 않나. 하지만 ‘SNL 코리아’의 해당 장면에선 코미디를 위한 그 어떤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히 한 인물의 도드라지는 특징을 과장되게 표현할 뿐이다. 그러니 결국 남는 건 희화화와 조롱 섞인 표현일 수밖에 없다.
초창기 ‘SNL 코리아’의 방향성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논란이 더욱 아쉽다. 당초 ‘SNL 코리아’는 몸 사리지 않는 신랄한 풍자로 인기를 얻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뒤숭숭하던 때엔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로 국정을 꼬집거나 몇몇 대통령을 패러디하며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대리만족은 물론 웃음까지 안기며 급부상했다. 현재 ‘SNL 코리아’는 어떠한가. 단순히 인기 있는 콘텐츠나 화제 인물을 허겁지겁 따라하기에 급급하다는 인상만이 남았다. 비단 한강 작가를 흉내낸 이번 편이 아니어도 과거와 같은 날카로움을 잃은지 오래다. 코미디를 향한 납작한 접근 방식이 아쉽다는 반응이 잇따르는 이유다.
‘SNL 코리아’가 한강 작가를 희화화한 회차에는 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의 국정감사 참고인 조사 장면을 따라 한 에피소드도 담겼다. “다른 사람은 이런 일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하러 나온 하니다. 하지만 그의 진심도 화제가 됐다는 이유 때문에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확실한 의미나 뚜렷한 목적 없는 풍자와 패러디는 유해한 희화화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SNL 코리아’는 코미디의 본질부터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