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이어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정책 등 통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의 합작 사업을 접거나 미루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1위 코발트 생산업체 화유코발트와 설립한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JV)의 공장 설립을 미뤘다.
양사는 지난 2023년 8월 합작법인 계약 체결식을 열고 중국 장쑤성 난징시, 저장성 취저우시에 각각 전(前)처리 공장, 후(後)처리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에는 2023년 하반기 공장 건설을 시작해 2024년 말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현재까지 착공도 안됐다. 합작공장에서 메탈을 생산해 LG에너지솔루션의 난징 배터리 생산공장에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캐즘 여파로 리사이클 사업의 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화유코발트 측과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유지하며 향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공장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SK온과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중국 GEM이 2023년 추진한 3자 합작법인 지이엠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 설립은 끝내 무산됐다.
3사는 최대 1조2100억원을 투자해 지난 2024년까지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연산 5만톤 수준의 전구체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캐즘 장기화와 함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해외우려기관(FEOC) 등 규제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밸류체인에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더불어 포스코홀딩스가 중국 CNGR와 손잡고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던 이차전지용 니켈 합작 공장 신설 프로젝트도 중단된 상태다.
포스코그룹은 지난해부터 그룹 이차전지 소재 사업을 리튬 중심의 광산 확보와 함께 현재 가동 중인 법인의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LG화학은 중국 화유그룹 산하 유산과 모로코에 연산 5만톤 규모의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합작공장을 짓기로 한 계획을 2026년에서 2027년 양산으로 미뤘다.
이러한 업계의 움직임은 중국산 배터리를 겨냥한 미 바이든 정부의 조치에 이어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대해 관세 전쟁을 시작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정부서 통과된 IRA 규정상 중국 정부와 관련된 합작사 지분율이 25% 이상인 경우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해당 기준을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중국 등 FEOC에 대한 규정을 수정할 경우 중국과 공급망이 연결된 국내 기업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캐즘 이후를 고려하면 중국의 풍부한 광물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라도 중국 기업과의 협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실장은 “전기차·배터리 업황이 안 좋아지면서 많은 기업이 투자를 연기하거나 변경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캐즘과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준모 율촌 미국변호사는 “국내 기업들이 중국과의 합작을 취소한 배경에는 FEOC가 분명 연관이 있을 것이고, FEOC 변수는 트럼프 정부 들어 더 커졌다”며 “불확실성을 고려해 산업 전반의 분위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