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생존 후 중증 합병증 ‘이식편대숙주질환’…“치료 사각지대 해소해야”

혈액암 생존 후 중증 합병증 ‘이식편대숙주질환’…“치료 사각지대 해소해야”

혈액암 생존자 비재발 사망 원인 1위 꼽혀
동종조혈모세포이식 환자 59% “이식 후 삶이 더 힘들어”
3차 치료 ‘레주록’ 허가…비급여에 한달 약값 1000만원
“산정특례 제도 개선돼야”

기사승인 2025-08-20 17:17:11 업데이트 2025-08-21 09:07:32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중증·희귀 합병증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신대현 기자

“백혈병 완치를 꿈꾸며 조혈모세포 이식을 선택했지만, 혈액암 치료가 끝난 뒤 발생한 이식편대숙주질환은 언제 끝날지 모를 끝없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환자 A씨)


혈액암 생존자의 비재발 사망 원인 1위로 꼽히는 중증·희귀질환 ‘이식편대숙주질환(GVHD)’ 치료제가 출시됐지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은 염증과 함께 섬유화 증상이 전신에 걸쳐 다발적으로 발현해 장기 손상 등을 일으키는 만큼 신속한 급여 등재를 통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중증·희귀 합병증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 발제를 통해 “이식편대숙주질환 환자들은 전신을 뒤덮은 증상의 완화를 위해 복수의 치료를 동시에 사용해야 하나, 감염 등 부작용이 있는 치료제가 많기 때문에 질환 외에도 심각한 신체적 고통을 견디며 투병하고 있다”며 이식편대숙주병 치료제인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의 ‘레주록’(성분명 벨루모수딜메실산염)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은 조혈모세포 이식이나 수혈을 받은 환자의 약 50%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증 자가면역질환이다. 항암 치료만으로 완치가 어려운 혈액암 환자에게 공여자의 골수에서 추출한 조직을 이식했을 때 기증받은 면역세포가 환자의 신체를 이물질로 인식해 주요 장기를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숙주 반응은 구강 점막부터 시작해 피부, 눈, 근육, 신경, 위장 등 전신에 동시다발적으로 침범해 전신 합병증을 유발한다.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에 따르면 이식편대숙주병 환자의 약 42%는 진단 당시부터 폐, 입 등 4개 이상의 장기에서 숙주 반응을 겪는다. 간, 폐 관련 숙주 반응은 사망 위험이 60%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특히 숙주 반응이 조혈모세포 이식 100일 후에 나타나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으로 진행될 경우 전신 염증 외에도 장기가 굳는 섬유화 현상이 동반돼 주요 장기의 비가역적 손상과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암등록통계(2012~2022년)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 혈액암 환자는 지난 10년간 49% 증가하는 등 매년 늘고 있으며, 조혈모세포 이식술 건수도 매년 상승해 이식편대숙주병 발병률이 증가할 조짐이다. 2023년 기준 국내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는 약 700명으로 추정된다.

이식편대숙주병 환자의 삶의 질은 전신성·다발성 경화증, 루푸스 환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지지만, 사회적 인식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혈액암협회 등에 따르면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는 평생에 걸친 장기간 치료와 잦은 입·퇴원, 예측 불가능한 증상과 감염 위험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75%의 환자는 소득 상실을 경험한다. 중등도 및 중증 환자 중 32%는 우울증을, 30%는 불안감을 겪는 등 삶의 질도 떨어진다. 국내 동종조혈모세포이식 경험 환자 59%는 “이식 후 삶이 더 힘들다”고 답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식편대숙주병은 평생에 걸쳐 병원 진료를 받고 입원 치료를 반복하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조혈모세포 이식 환자 50% 이상이 겪는 이식편대숙주질환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관심을 부탁드리고, 환자들의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곽경근 기자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의 1차 치료는 스테로이드 요법이 권고된다. 스테로이드에 불응인 환자들은 2차 치료로 야누스키나제(JAK) 저해제를 투약할 수 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요법은 고용량·장기 복용 시 골다공증, 관절 괴사, 장기부전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JAK 저해제도 폐, 간 등 주요 장기의 섬유화에 대한 반응률이 낮아 완전한 치료법은 아니다.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70%의 환자는 1차 치료에 실패해 2차 치료로 넘어가는데, 2차 치료 실패 환자 비율은 47%에 달한다.

스테로이드, JAK 저해제 한계를 보완한 신약 레주록이 국내 허가됐지만, 이마저도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못해 사용에 제한이 있다. 한 달 약값만 1000만원에 달해 환자 부담이 크다. 레주록은 염증과 섬유화의 주요 원인인 ROCK2 신호전달 경로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면역 반응을 조절하면서 질환 진행을 막는 기전이다. 임상 결과, 전체 반응률은 75%를 기록했으며 기존 치료에서 반응이 미미했던 폐(26%), 간(39%), 관절(71%)에서도 유의미한 반응을 보였다.

곽대훈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벨루모수딜은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만을 위해 특화된 치료제로, 염증 및 섬유화 모두를 표적하는 새로운 작용기전을 가진다”면서 “영국은 2024년 2월 급여가 확정됐으며, 일본도 지난해 3월 허가받아 그해 5월 보험급여가 등재돼 3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성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들의 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선 단계적으로 섬유화를 해소할 수 있는 3차 치료제(레주록)에 대한 접근성 강화가 필요하다”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조혈모세포 이식 이후 발생한 합병증에 대한 대책 마련과 환자들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지원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은 레주록의 신속한 급여화를 통해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호소한다.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환자 A씨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해 가족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봐 마음이 아프다. 환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면서 “환자들이 치료비 부담으로 고통받지 않을 수 있도록 산정특례 제도가 항암치료 이후에 발생하는 중증 희귀합병증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신약 급여 절차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은희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행정사무관은 “암이나 희귀·중증질환 신약들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강화하고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신약 경제성 평가 생략 제도, 위험분담제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신약 급여 절차가 원만히 진행돼 환자들의 고통을 덜 수 있도록 잘 챙기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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