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18일 HBM4E 12단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했다. 애초 올해 하반기로 예고했던 일정을 수개월 앞당긴 조치다. 삼성전자가 5월29일 업계 최초로 HBM4E 샘플을 출하한 지 약 20일 만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고성능 메모리다. AI 가속기의 핵심 두뇌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옆에 배치돼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한다. 인공지능(AI) 모델이 커질수록 HBM의 속도와 용량, 전력 효율이 중요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개한 HBM4E의 기본 성능은 비슷하다. 두 제품 모두 D램 12개를 쌓아 48GB 용량을 구현했다. 데이터 전송 속도도 핀당 최대 16Gbps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먼저 쥔 삼성전자는 5월29일 HBM4E 샘플 출하를 공식화했다. 기존 3분기 로드맵을 수개월 앞당겼다. 단일 제품이 1초에 최대 3.6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를 처리하며, 6세대 10나노급 1c D램과 자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의 4나노 베이스 다이를 결합했다. 글로벌 메모리 3사 가운데 파운드리 기술을 동시에 내재화한 기업은 삼성전자뿐이다. 삼성전자는 HBM4 양산 과정에서 검증한 공정을 HBM4E에도 활용해 생산 안정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최초’ 대신 ‘안정성’을 내세웠다. 신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전작(HBM4) 대비 20% 이상 높였고, 열 저항은 17% 줄였다.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핵심 칩에 처음 적용했으며, 독자적인 패키징 기술인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으로 12단 적층 구조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1c 나노 공정은 2025년 말부터 양산에 돌입해 수율과 생산 능력이 이미 성숙 단계에 이른 상태다. SK하이닉스 김기태 HBM 세일즈·마케팅 담당은 지난 4월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HBM4E는 내부적으로 하반기 샘플 공급을 준비 중이고 2027년 양산 목표를 세웠다”며 “1c 나노 공정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안정적인 성능과 물량의 HBM4E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약속보다 이른 공급을 실행에 옮겼다.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 사장(CDO)은 “업계 최고의 기술 경쟁력과 양산 역량을 HBM4E 제품에서도 이어가 AI 혁신을 지속적으로 리드해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파트너들과 협력을 바탕으로 시장이 요구하는 가치를 선제적으로 구현해 풀 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로서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최종 목적지는 엔비디아 ‘베라 루빈 울트라’
다만, 샘플 출하가 곧바로 공급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객사는 전달받은 제품을 자사 AI 가속기와 결합해 성능과 발열, 전력 소비량 등을 검증한다. 이후 생산 수율과 공급 능력까지 확인해야 본격적인 양산 계약이 가능하다.
고객사와의 끈끈한 파트너십에서는 SK하이닉스가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6월2일 대만 컴퓨텍스 2026에서 “고객이 준비될 때마다 우리도 준비해야 하며 로드맵은 전적으로 고객에게 달려 있다”라며 “현재 HBM4E의 고객은 단 한 곳뿐”이라고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해당 고객사를 엔비디아로 보고 있다.
같은 날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역시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HBM4E 웨이퍼에 “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Please, Make More)”라는 친필 메시지를 남기며 증산을 요청했다.
진짜 승부는 2027년, ‘수율’이 가른다
업계 시선은 이제 엔비디아의 퀄테스트(품질 검증) 통과 여부로 쏠린다. 퀄테스트를 통과하면 엔비디아 외에도 AMD, 구글 등 다른 AI 칩 설계사로의 납품 가능성이 열린다. 양사의 패키징 기술 방식도 다르다. 삼성전자는 칩 사이에 절연 필름을 덧대어 압착하는 TC NCF, SK하이닉스는 칩 사이 공간에 액체 보호재를 채우는 MR-MUF 방식을 택했다. 접근법이 다른 만큼 최종 수율에서도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매출 기준 58%의 점유율로 1위를 지켰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각각 21%를 기록했다. 이번 HBM4E 경쟁은 SK하이닉스에는 왕좌 수성을, 삼성전자에게는 판도 뒤집기를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