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지난해 12월17일 두산을 SK실트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최종 계약 체결 여부와 매각 대상 지분, 거래가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SK는 공식 공시에서도 세부 조건을 두산과 협의해 결정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말 5조원 안팎이던 SK실트론의 기업가치가 최근 7조원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AI용 메모리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기초 소재인 웨이퍼의 전략적 가치도 커졌기 때문이다.
웨이퍼는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원판 형태의 소재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HBM과 DDR5,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생산이 늘면 첨단 반도체용 300㎜ 웨이퍼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SK실트론은 300㎜ 웨이퍼 시장에서 세계 3위권 업체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기준 시장점유율을 17~19%로 추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향 매출이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두 회사가 구매하는 웨이퍼 가운데 SK실트론 제품의 비중은 각각 30%, 50% 안팎으로 분석된다.
AI 반도체 호황은 출하량에도 반영되고 있다. SK실트론의 300㎜ 웨이퍼 출하량은 지난해부터 올해 1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이어갔다. 올해 하반기 구미 신공장이 가동되면 생산능력도 늘어날 전망이다. 증설 물량 상당 부분은 이미 장기공급계약을 확보했다. 다만 웨이퍼 시장이 이미 공급 부족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고객사 재고가 남아 있는 데다 경쟁사 증설 물량도 풀리면서, 웨이퍼 판매가격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적도 아직 신통치 않다. 실리콘 웨이퍼 사업은 지난해 407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SiC 웨이퍼 사업이 2145억원의 적자를 내며 전체 실적을 끌어내렸다. 올해 1분기 연결 영업이익은 8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6.7% 줄었다. AI 수요가 출하량은 늘렸지만, 판가와 수익성 회복으로는 아직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SK가 매각을 고심할 이유는 분명하다. 앞으로 웨이퍼 수급이 빠듯해지면 SK하이닉스가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거나 더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할 수 있다.
사업가치가 커진 것과 달리, 신용도는 오히려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5일 정기평가에서 SK실트론의 무보증사채와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각각 A+와 A2+로 유지했다. 다만 두 등급에 대한 워치리스트 ‘하향검토’ 등록은 해제하지 않았다.
SK실트론은 두산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18일부터 하향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하향검토’는 신용등급이 이미 내려갔다는 뜻이 아니다. 매각 진행 상황과 최대주주 변경 이후 사업·재무구조를 살핀 뒤 등급을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핵심은 SK그룹의 지원 가능성이다. 현재 등급에는 경영 악화 시 SK그룹이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이 반영돼, 자체 신용도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을 받고 있다. 두산이 최대주주가 되면 이 지원 효과를 반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차입금도 변수다. 올해 5월 말 기준 지배구조 변경 제한 특약이 붙은 SK실트론 차입금은 1조4890억원이다. 이 가운데 회사채는 7030억원이다. 최대주주가 바뀌면 채권자 동의를 받거나 기존 차입금을 새 대출로 바꾸는 차환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SK실트론의 올해 3월 말 총차입금은 3조855억원이다. 현금성 자산을 제외한 순차입금은 2조6234억원이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도 지난해 말 5.1배에서 올해 3월 말 8.6배로 높아졌다.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과 비교해 빚 부담이 커졌다는 의미다.
SiC 사업 부진도 재무구조를 압박하고 있다. SK실트론은 지난해 SiC 사업에서 4141억원의 손상차손을 반영했다. 이 영향으로 연결기준 293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3월 말 기준 관련 영업권은 모두 손상 처리됐지만 재고와 유·무형자산이 남아 있어 추가 손실 가능성도 있다.
SK는 매각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고 사업구조 재편에 속도를 낼 수 있지만,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가치가 커지는 핵심 소재 기업을 외부에 넘겨야 한다. 두산은 SK실트론을 인수하면 두산테스나에 이어 웨이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지만, 인수대금뿐 아니라 기존 차입금의 차환 부담과 신용도 변화까지 함께 감당해야 한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