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훈이(가명) 엄마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인천 서부교육청 위센터 주명환(41) 전문상담교사는 지난 3월16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훈이의 집으로 달려간 주 선생은 방문을 두들겼다. “훈아, 난 니 얘기를 들어주려고 온 상담선생님이야. 문 좀 열어줄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창문을 열고 넘어가려 했다. 훈이는 창문을 탁 닫아버렸다. 한참 만에 나온 훈이는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방으로 쏙 들어갔다. 퀭한 얼굴, 머리는 뒤범벅, 얼굴엔 여드름이 가득했다.
훈이는 세수도 하지 않고 낮에는 잠만 자고 밤이면 거실에서 인터넷 게임을 했다. 밥도 혼자 먹었다. 엄마 아빠 누나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다. 겨울방학 때부터 방문을 걸어잠그더니, 개학을 했는데도 나오질 않았다.
학생이 상담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 주 선생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매일 전화를 걸어 엄마와 상담하고 훈이를 찾아갔다. 일주일 만에 겨우 방에 들어갔지만, 훈이는 입도 떼지 않았다. 짜증스럽다는 듯 눈만 찡그렸다. 상담을 위한 심리검사도 할 수 없었다. 주 선생은 10분 만에 쫓기듯 나왔다. 난감했다. 밤새 자료를 뒤져봐도 훈이와 같은 사례는 드물었다. 어떻게 훈이의 마음을 열어야 할지, 답이 없었다.
세번째 방문. 주 선생은 게임을 이용하기로 했다. “너 ‘서든어택(컴퓨터게임 이름)’ 잘하지? 선생님도 잘하고 싶은데, 우리 사무실 가서 가르쳐 줄래?” 훈이의 눈이 반짝였다. “네.” 처음 듣는 훈이 목소리였다.
네번째 방문. 과연 훈이가 밖으로 나와 줄까? 주 선생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훈이를 찾아갔다. “나랑 우리 사무실에 가자. 지난번에 약속했지?” 훈이는 천천히 집 밖으로 나왔다. 100여일 만의 외출이었다.
차 안에서 주 선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훈이에게 털어놓았다. “나도 고등학생 때 문제아였어. 등교 하자마자 의자를 집어던지고 싸웠지. 세상이 다 싫더라. 차라리 교도소에 가고 싶었어.” 훈이는 듣고만 있었다. 주 선생이 학생에게 자신의 얘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괜한 말을 해서 신뢰감만 잃은 것은 아닐까.’ 주 선생의 속이 타들어 갔다.
엄마는 훈이에게 있었던 일을 전해줬다. 훈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첫해에 체육복을 6번이나 잃어버렸다. 교과서 참고서도 자주 도둑 맞았다. 옷이 찢어진 적도 있었다. 학교에선 아무 일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사업하느라 1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왔다. 훈이를 보면 ‘공부 안하고 뭐해’ ‘넌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나무라기 일쑤였다. 누나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다섯번째 방문. 훈이가 말했다. “정말 선생님도 그렇게 힘들었어요?” 처음으로 문장을 말했다.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없어요. 가장 좋았던 기억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었던 일. 가장 좋아하는 일은 컴퓨터 게임. 우리 아빠는 공부밖에 모르죠. 하나님은 왜 나만 이렇게 약하게 낳았을까요. 날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나예요.”
내성적인 훈이는, 어린 시절 정답고 따뜻했던 아버지가 바뀐 것도, 급우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방 안에 가둔 것이다. “널 위해 뭘 해주면 좋겠니.” 주 선생의 질문에, 훈이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한참 만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저를…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해주면 좋겠어요.”
훈이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주 선생 눈에서도 뚝뚝, 눈물이 흘렀다.
주 선생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을 살리려면 아버님이 바뀌셔야 합니다.” 엄마는 아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대성통곡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왕따 가해자가 누구인지, 훈이는 끝까지 털어놓지 않았다. 담임과 상담한 끝에 훈이를 대안학교에 소개하기로 했다.
훈이는 대안학교에 잘 적응했다. “근육을 기르고 싶다”면서 헬스클럽에도 나갔다. 아버지도 훈이에게 자주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가끔은 전화통화도 했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이번 여름엔 가족과 함께 동해안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설악산 봉화대에 오른 훈이는 동해바다를 향해 “야∼호”하고 크게 외쳤다. 이날 밤 훈이는 철든 뒤 처음으로 엄마와 손깍지를 끼고 잠들었다.
훈이의 설악산 등반 얘기를 들은 주 선생은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럴 때 사는 맛을 느낀다”는 주 선생은 안경을 고쳐쓰면서 “안심해서도 안되고 서둘러서도 안된다. 훈이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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