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공명규 “아르헨 대통령 경호…화려한 삶 버리고 무일푼으로 탱고 올인”

[쿠키人터뷰] 공명규 “아르헨 대통령 경호…화려한 삶 버리고 무일푼으로 탱고 올인”

기사승인 2009-09-21 11:32:01

"[쿠키 연예] 120분 동안 쉴 새 없이 손과 발이 움직인다. ‘인간의 신체가 이토록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호기심이 일 정도로 현란하다. 무용수들은 서로의 가쁜 숨결을 연주곡 삼아 영혼을 울리는 몸짓을 펼쳐보인다. 서로를 탐닉하듯 격정적 리듬에 몸을 흔들 때마다 무용수들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관객은 짜릿한 전율의 세계로 빠져든다.

지난 2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성황리에 마친 ‘피버 탱고2’ 공연의 내용이다. ‘피버탱고2’는 일반적 탱고에서 강렬한 몸짓과 섹시 코드를 첨가한 버전이다. 4분의 2박자 기본 리듬보다 좀 더 경쾌하다. 여자 무용수들이 란제리 룩을 입고, 섹시하게 춤을 추는 모습은 볼거리를 더한다. 그래서 ‘탱고’라는 이름 앞에 ‘열정’을 의미하는 단어 ‘피버’(Fever)가 붙었다.

태권도 사범→아르헨 대통령 경호팀장→골프선수→탱고 지도자

아르헨티나의 열정적 탱고를 담은 ‘피버 탱고2’가 지난 2007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상륙했다. 발레리나, 째즈 및 현대 무용가 등 아르헨티나에서 내로라하는 무용수 14명이 엄선됐다.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동양인 최초로 아르헨티나 탱고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를 얻은 공명규 씨다.

그는 총 연출자이기에 앞서 무용수다. 50대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패기 넘치는 젊은 무용수 사이에서도 주눅 드는 법이 없다. 20대 여자 무용수의 몸을 한 손으로 감아 돌린다. 무대를 응시하는 눈빛은 강렬하다.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곱사춤 무형문화재 공옥진 여사의 조카이기도 하다.

공 씨는 ‘탱고’ 없이 하루도 못 사는 남자다. 그의 탱고 인연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권도를 전파하기 위해 온 가족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 현지에서 대통령 경호 태권도팀장을 역임하면서 부유한 삶을 살았다. 상류층 인사들과 어울리면서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뛰어난 운동 실력으로 1993년부터 PGA 프로골퍼 선수로도 활동했다. 1996년에는 상금 6위에 올랐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그는 이민자로서 안정적이고 성공한 삶을 사는 듯 했다. ‘탱고’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현지인들과 뼈 속 깊이 호흡하고 싶어서 그들의 고유 춤인 ‘탱고’를 배우게 됐다. 취미 삼아 시작한 탱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안락한 삶을 포기해도 좋다”는 용기까지 생겼을 정도다. 탱고를 향한 그의 열망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화려한 삶을 버리고 모든 것을 탱고에 올인했다. 하지만 그를 응원해 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반대가 심하니 아내에게 골프를 치러 간다고 거짓말 하고 탱고 배우러 간 적도 많아요(웃음). 숨어서 배우는 제 심정은 오죽이나 답답했겠어요. 하지만 어떠한 희생이 아깝지 않았을 정도로 탱고에 푹 빠졌습니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배우고 탱고를 알렸더니, 아내와 아이들도 이젠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답니다.”

2003년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탱고 홍보대사’로 임명받은 뒤에는 본격적으로 ‘탱고’를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모국인 한국에 ‘탱고의 뿌리’를 뻗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해졌다. 그러다 2004년 아르헨티나 한국 수교 45주년을 기념해 세계 3대 극장 중 하나로 꼽히는 아르헨티나 세르반데스 국립극장에서 직접 연출한 탱고 공연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2004년 KBS ‘인간극장-공명규의 탱고 아리랑’을 통해 그의 삶이 공개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연출한 탱고 공연을 후원해주는 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공연 팀을 꾸린 후 지금까지도 후원자의 도움 없이 자비로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 있었다.

“후원자가 없다보니 광고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입소문에 의지하고 있어요. 다행히 우리 공연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올해는 한전아트센터 무대에도 오를 수 있게 됐습니다. ‘탱고’를 향한 무용수들의 뜨거운 열정은 직접 봐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

탱고는 직접 보고, 호흡해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영상이나 인쇄 매체를 통해 접하는 탱고는 화려함의 껍질을 입은 허상과도 같다. 감동은 절반에 미치지 못 한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유럽으로 떠났다. 세계인들이 모여 있는 유럽에서 ‘아르헨티나의 탱고’의 진수를 온몸으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의 팀은 어디를 가나 ‘브라보! 브라보!’를 연발하는 관객에게 둘러싸였다. 낯선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는 유럽인들의 특성상 상대방과 몸을 부비며 호흡하는 ‘탱고’는 매력만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은 동양인 공명규를 향한 관심도 뜨거웠다. 현재 동양권에서 ‘탱고’는 일본이 가장 발전했다. 따라서 ‘탱고를 추는 동양인은 대부분 일본인일 것’이라는 유럽인들의 편견이 있다. 일본이 세계적 수준에 오른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불모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에 탱고 알리기 박차를 가했다.

“일본은 100년 전부터 ‘탱고’를 하나의 사업으로 규정하고 막대한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투자한 만큼이나 막대한 이익을 얻었죠. ‘탱고’ 사업으로 아르헨티나 식량의 75%를 가져간다고 하더라고요. 세계 선수권 대회도 일본이 만들었고, 올해 세계 선수권 우승도 일본인이 했죠. 일본에서 독식한 탱고 시장을 국내에서도 활성화시키고 싶습니다. 그게 절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랍니다.”

라이브 음악과 춤이 살아있는 ‘피버탱고2’

그의 사전에 ‘재탕 공연’이란 없다. 전 세계인들이 극찬했다고 해서 비슷한 내용의 공연을 반복해서 올리지 않는다. 국민성, 무대 규모, 분위기 등 다양한 상황에 따라 내용을 변경하고 새롭게 춤을 짠다. “똑같은 내용은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게 그의 공연 철학이다.

‘피버탱고2’는 한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한 공연이다. 화려한 몸짓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비슷한 동작을 줄였고, 새로 개발한 춤을 삽입했다. 100여 벌의 의상을 준비해 몇 분마다 한 번씩 옷을 갈아입었으며, 탱고 슈즈도 색상별로 준비해 비주얼의 정교함을 살렸다.

여자 무용수들이 붉은색 란제리 룩을 입고 요염하게 몸을 흔드는 2부 첫 공연은 관객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드레스 사이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드러내는 과감함도 있다. ‘섹시’ 코드를 접목했으나, 외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블랙 앤 화이트’ 공연은 백미다. 신체의 절반을 검은색과 흰색으로 나눠 방향이 바뀔 때마다 2가지 공연이 동시에 펼쳐진다.

라이브 연주도 생동감을 더한다. 무용수들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들려주는 연주는 휴식과도 같은 차분함을 준다. 명곡 클래식 모음은 물론이거니와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춤을 추던 노래 ‘포르 우나 카베사’를 만나는 기쁨도 선사한다.

화끈한 아르헨티나 탱고의 세계로 빠지고 싶다면 오는 25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으로 찾아가면 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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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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