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늑장 행정’에 나영이 국민 성금 못받는다

[단독] ‘늑장 행정’에 나영이 국민 성금 못받는다

기사승인 2009-11-16 19:44:01

[쿠키 사회] 시민과 네티즌이 ‘조두순 사건’ 피해자 나영이(가명·9)를 위해 낸 성금을 나영이 가족이 당장 받을 수 없게 됐다. 경직된 법 적용과 행정기관의 늑장 처리 탓이다. 당장 치료비 등이 절실한 나영이 가족으로선 또 한번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나영이 모금을 주도한 ‘따뜻한 햇살 양성평등 상담소’(이하 햇살상담소)는 16일 예정됐던 모금 전달식을 취소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금을 전달하면 나영이 가족이 기초생활수급권을 잃게 된다는 관할 경기도 안산시의 지적 때문이었다.

햇살상담소는 지난 9월 29일∼10월 31일 포털 네이버 해피빈에 모금함을 개설, 총 3만612명의 네티즌으로부터 7743만3400원을 모았다. 여기에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복지모금회)와 포털 다음 등을 통해 모금된 돈을 합치면 성금은 1억5000여만원이 넘는다.

애초 나영이 가족은 성금을 치료비와 배변용품 구입비, 책값, 고교 및 대학 입학금 등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물거품이 됐다.

안산시는 성금이 전달되면 재산이 늘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된다고 알렸다. 현행법상 중소도시의 경우 근로능력자가 있고 부동산과 동산, 금융자산 등 총 재산이 3400만원 이상인 가구는 기초생활수급권 혜택을 받지 못한다.

나영이 가족은 급한 대로 복지모금회에 성금을 예치하기로 했다. 이 경우 나영이가 만18세가 될 때까지 나영이 가족은 성금에서 월 20만원 이상 받지 못한다.

안산시 관계자는 “이달 초 나영이 가족의 기초생활수급권 문제로 보건복지가족부에 질의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며 “나영이 가족에게 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상급기관에서 판단을 내려주지 않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복지부는 안산시의 관련 질의를 받은 지 열흘이 넘도록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바쁘다는 것이다. 복지부 담당자는 “예산안 신청 문제로 바빠 나영이 문제를 검토하지 못했다”며 “모금이 전달되면 기초생활수급권을 계속 부여하긴 어렵다. 이 경우 해당 지자체에서 생활보장심의위원회를 열고 지원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햇살상담소 관계자는 “온 국민이 나영이를 응원하며 자발적으로 모은 돈이 엉터리 행정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 한다니 안타깝다”고 한 숨 쉬었다. 나영이는 지난해 말 등굣길에 조두순으로부터 성폭행과 무자비한 구타를 당해 항문과 대장, 생식기의 80%를 잃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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