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유준상 “홍 감독 영화, 내 모든 감각을 아이처럼 만들어”

[쿠키人터뷰] 유준상 “홍 감독 영화, 내 모든 감각을 아이처럼 만들어”

기사승인 2011-09-07 08:01:00


[쿠키 영화] 배우 유준상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으로 오는 8일 관객을 만난다.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하하하’(2009)에 이어 벌써 세 번째 홍 감독의 영화로 관객을 찾고 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다른 나라에서’까지 하면 네 번의 호흡을 자랑하니 페르소나로 불릴 만하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의 카페에서 유준상을 만났다. 훤칠한 키에 또랑또랑한 눈을 가진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시종일관 밝은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팥빙수를 주문한 후 “피곤할 때는 단 것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모습에서는 유쾌함마저 느껴졌다.

‘북촌 방향’의 홍보와 더불어 영화 ‘비상: 태양 가까이’의 막바지 촬영과 ‘터치’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오전 촬영 분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새 영화를 소개하는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하다”며 웃어 보였다.

유준상은 홍 감독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홍 감독은 촬영 당일에 대본을 쓰고 결말을 비롯해 영화의 방향을 미리 알려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홍 감독님의 영화를 통해 내게 없던 부분을 발견하게 돼요. 낯선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마다 행복함을 느끼고 ‘이런 모습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다시 찾아보게 되죠. 순간순간에 집중해 나오는 모습들인데 홍 감독님의 영화를 통해 그런 것을 간직하게 되고 다음 작품에서 그 모습을 활용할 수 있게 되니 너무 좋아요.”

영화를 찍는 동안 다음 장면이나 결말이 궁금하지는 않을까. “궁금한 것을 진짜 못 참는 성격이다. 세상에서 궁금한 게 제일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는 “홍 감독을 통해 배워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궁금한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참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더라”고 말했다.

촬영 당일 대본을 받고, 받는 즉시 대사를 외우고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이런 과정이 영화를 찍으며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영화를 찍으며 재밌는 순간은 없었다. 찍는 동안은 고통의 연속이다. 정말 추운 날 대본을 받고 즉시 대사를 외우고 감독님이 원하는 감정을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 고통의 과정 속에서 유준상은 아이처럼 변해 갔단다. “감독님은 대본을 항상 촬영 당일에 주기 때문에 기대감이 있어요. 대본을 기다릴 때면 매일 밤 아빠가 이야기해 주는 동화를 기다리는 아이가 되는 것 같죠. 내 모든 감각이 아이처럼 변하는 듯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영화 속으로 훅~ 들어가게 됩니다.”

유준상은 최근 열린 ‘북촌방향’ 언론시사회에서도 “영화를 찍으며 마법에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고, “결혼을 한 사실도 잊게 되고 아이들이 떠오르지도 않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사랑하는 가족도 떠오르지 않았다니. 아내 홍은희와 두 아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았을까. 유준상은 당시를 회상하며 “집에 갔더니 아내가 ‘진짜 우리를 잊고 하셨어요?’라고 묻더라”며 웃었다. “영화를 찍는 순간만큼은 정말 그랬고, 요즘은 촬영하다 집에 전화하면 아내가 ‘전화하지 말고 일하셔야죠. 전화 안 받을 거예요’라고 말한다”고 홍은희의 말투를 흉내 내 가며 미소 지었다.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관객 반응을 보며 깜짝 놀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영화는 사실성 있는 묘사로 관객들에게 의외의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단 한 번도 웃긴 장면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관객들과 함께 보는데 관객들이 빵빵 터지며 많이 웃으시기에 저도 더 즐겁게 봤네요.”

함께 연기한 김상중에 대한 칭찬도 빠지지 않았다. 김상중과 유준상은 동국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상중 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기관리가 철저한, 배울 점이 많은 형님”이라며 말을 시작했다.

“술을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정확히 일어날 때 일어나고, 일할 때는 정말 열심히 하세요. 홍 감독의 작품 스타일을 겪어 보고 싶어서 촬영에 응했다고 들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았고요.”

유준상은 저예산 영화나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계 없이 의미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되는 작품에 출연한다.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영화 제의가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하려고 합니다. 다만 스스로, 캐릭터가 재미있다고 느껴야 하고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는 역이면 두말할 나위 없고요.”

유준상이 밝힌 영화 선택 기준의 진정성은 정지훈(비), 신세경과 김동원 감독의 ‘비상: 태양가까이’에 출연 중인 그가 예술영화를 만드는 민병훈 감독의 ‘터치’의 주연으로 나선 것에서도 확인된다. 연이은 작품 활동에 지칠 법도 하건만 “몸(체력)이 닿는 한 쉴 틈 없이 계속하고 싶다”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민병훈 감독과는 러시아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을 함께 보냈다.

“촬영 중인 ‘터치’는 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민병훈 감독의 작품입니다. 20대 때부터 만난 친구인데, 함께 작업을 해 보니 현장 적응력이나 영화의 그림들이 매우 훌륭해 행복하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힘든 영화촬영을 버텨내는 그만의 건강관리법이 있을까. 그의 답은 ‘아니오’였다. 흔한 건강식품조차 잘 챙겨 먹지 않는단다. 하지만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꾸준히 단련해 온 체력이 비법 아닌 비법이었다.

“건강관리는 공연을 하면 저절로 되는 것 같아요. 지치는 순간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담배도 안 피우려 하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게 되죠. 또 소리 훈련과 스트레칭 등이 건강에 도움이 돼요. 건강식품에는 의지하지 않으려고 웬만하면 자제하는 편이죠.”

뮤지컬, 영화, 드라마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는 “대극장에서 공연을 하지만 영화를 하듯 세밀한 감정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잭 더 리퍼’를 하는 동안엔 내내 우는데 그 울음이 보이지는 않더라도 관객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이런 것들을 통해 언제든지 툭 치면 그 캐릭터의 감정이 나오게 훈련할 수 있다. 이는 영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건강 비법을 넘어 연기법을 귀띔했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공연장에 자주 아이들을 데리고 가요. 신기한 게 예전에는 뮤지컬 ‘삼총사’에서 제가 사과를 베면 ‘사과 어떻게 베요?’라고 물을 정도로 아빠가 진짜 칼을 쓰는 줄 알았는데, 요즘에는 (이미 잘려진) 사과를 들고 반으로 쪼개더니 ‘이런 거였군요’라고 하더라고요. ‘아홉 살짜리는 더 이상 속일 수 없구나. 이젠 세 살짜리를 속여야지’ 생각했죠(웃음).”

밝고 활발한 성격과 달리 쉬는 날에는 주로 혼자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책 보고 노래 만들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쉬는 동안에는 쉬는 게 아까울 정도로 집에서 알차게 보내죠. 사람들은 거의 안 만나요. 혼자 있어도 시간이 잘 지나가니까요. 공연이나 촬영 외에는 거의 집에 있죠.”

마지막으로 유준상은 “연기를 하면서 좋은 선배님들과 후배들을 만나고 있어요. 이들의 좋은 점을 캐치해서 더 발전하는 배우가 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캐릭터로 많은 분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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