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블루칩] 한예리 “영화계 떠오르는 샛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왔죠”

[Ki-Z 블루칩] 한예리 “영화계 떠오르는 샛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왔죠”

기사승인 2011-09-24 13:05:01

[쿠키 영화] 외꺼풀의 강렬한 눈매, 짧은 헤어스타일의 보이시한 매력이 눈길을 끈다. 한 때는 커다란 눈망울을 선망해 성형외과를 찾기도 했지만 ‘한 군데 고치면 전부 손을 대야 한다’는 의사의 만류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배우가 된 지금은 당시 발길을 돌리게 해준 의사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가수 박정현이나 배우 공효진, 심지어 피겨여왕 김연아를 닮았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자연스러운 표정 연기와 신인 같지 않은 안정감 있는 표현력으로 영화계에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신예 한예리(27)의 이야기다.


‘독립영화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불리는 한예리가 영화 ‘평범한 날들’로 관객을 다시 찾는다. ‘평범한 날들’은 세 개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영화로, 송새벽과 한예리 그리고 이주승이 각각 주연을 맡아 연기했다.

한예리가 맡은 ‘아몽(AMONG)’은 5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주인공 효리가 실연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다리 부상을 입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고향으로 내려가 요양하던 그는 회복 후 상경해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잠이 오지 않던 밤, 자신이 사실은 괜찮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분량은 단편과 비슷해요. 제 출연분 말고도 다른 두 편의 시나리오도 읽고, 서로 의논하며 한 작품을 찍는 것처럼 촬영했어요. 옴니버스인 만큼 하나의 분위기로 흘러가야하고, 그러려면 어느 정도 톤이 맞아야 하거든요. 송새벽 선배님은 특유의 어눌한 말투와 풍자적인 대화가 인상적이었는데, 너무 재미있고 유머러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있었어요.”

이 시대의 ‘쿨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충격적인 일에도 ‘난 괜찮아’를 외치는 일이다. 한예리가 맡았던 극중 효리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친구의 터무니없는 이별 통보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감정을 삭히며 분노와 슬픔을 내면에 쌓아간다.

“연기하면서 알게 됐는데, ‘쿨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은 정신적으로 위험한 거래요. 스스로를 동정하지 못하고 ‘나는 괜찮아’를 외치는 일은 오히려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위험하다고 해요. 급기야 어느 상황에서 내가 울어야 하는지 웃어야 하는지를 모르게 되는 거죠. 결국은 영화에서처럼 한꺼번에 터지잖아요. 결국 ‘쿨하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극중 이름은 가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효리다. 송새벽이 연기한 한철과 이주승이 연기한 수혁처럼 이름에 히읗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난 감독의 뜻이 컸다. 또한 가수 이효리처럼 영화에서 효리가 키도 크고 글래머 이미지를 풍겼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함께 작업한 이난 감독은 한예리가 믿고 의지하며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는 “이번 영화는 이난 감독님다운 영화라고 생각하다. 분출되는 게 단계적으로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며 “감독님만의 색채나 비주얼, 말하는 방법 등이 돋보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한예리는 어린 시절 무용 유망주였다. 어린 나이에 무용에 재능을 보인 그는 예술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국내 유수의 무용 콩쿠르에 출전해 트로피를 놓친 기억이 없을 만큼 큰 두각을 보였다. 그러나 162cm라는 비교적 작은 신장 때문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용은 키가 중요해요. 저는 아쉽게 160cm 초반에서 성장이 멈춰버려 당시 콤플렉스가 심했지요. 무용했던 학창시절에는 안 우는 날이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어요.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외향적인 것을 중요시했으니까요. 그래서 무용수를 접고 교육자로 전향해 이론을 배우려고 결심했었죠.”

무용에 대해 회의감이 느껴졌을 무렵, 영화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한 친구가 영화에 들어갈 안무를 부탁했고, 그 인연을 계기로 단편 영화 ‘기린과 아프리카’의 주연으로 발탁되며 배우로 첫 발을 내딛었다.

“문득 무용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고 생각했을 무렵이었어요. 무용이 나에게 중요했지만, 춤이 중요하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런데 영화는 달랐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자신이었죠. 첫 작품의 촬영이 끝났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무엇보다 현장의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궁극적으로 영화라는 큰 틀 안에 모두들 예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로 데뷔한 이후에는 막힘없이 흘러갔다. 섭외가 줄을 이었고, 한 작품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 작품의 촬영을 들어가 ‘독립영화의 떠오르는 샛별’이라 불릴 정도가 됐다. 데뷔한지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2007년과 2010년 미쟝센단편영화제 연기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가끔 엄마가 농담으로 ‘무용할 때는 네가 힘들어했는데, 영화하면서 이렇게 술술 잘되는 것 보니 영화를 하기 위해 무용을 한 것만 같다’고 하세요. 즐기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인 것 같고, 그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한예리는 ‘평범한 날들’에 대해 “괴롭지만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며 “관객들이 편안하게 보셨으면 좋겠다.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가벼워질 수도 있지만, 관람 후에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독립영화의 샛별’이라는 타이틀을 보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원, 배두나와 함께 남북 탁구 선수들의 대결과 감동을 전하는 영화 ‘코리아’에 캐스팅돼 촬영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극중 북한선수 유순복 역을 맡은 그는 “촬영 현장에 처음 간 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찍었던 영화보다 스태프가 두 배로 많았다”며 “유순복 선수의 실제 경기를 모니터링 했는데,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 나와 너무 닮은 것 같아 기뻤다”고 전했다.

한예리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 아니다. 크고 작은 작품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쌓아 온 만큼 앞으로 천의 얼굴을 기대케 하는 배우다.

“배우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이 불러주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에요. 배우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차근차근 잘,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하면서 행복한 저의 마음이 앞으로도 오래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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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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