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정재영 “전도연 보러 왔다 나를 느끼고 가길…”

[쿠키人터뷰] 정재영 “전도연 보러 왔다 나를 느끼고 가길…”

기사승인 2011-10-05 08:33:00

"[쿠키 영화] 배우 정재영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담겨있다. 살짝 찌푸린 모습에서는 묵직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만 허허 웃어 보일 때면 나이를 잊은 개구쟁이의 모습이 비친다.

지난달 2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정재영을 만났다. 연기 경력 15년에 충무로가 인정한 연기파 배우이지만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함과 소탈함이 매력적인 사람이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로 이야기를 풀어 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이 새 빨개질 정도로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정재영은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카운트다운’으로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카운트다운’은 10일 이내에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구해야 하는 냉혹한 채권추심원(정재영)이 미모의 사기전과범(전도연)과 벌이는 위험한 거래를 담은 액션 드라마다. 신예 허종호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제3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리젠테이션 섹션과 제12회 도쿄필름엑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영화에서 정재영은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은 남자 태건호 역을 맡았다. 웃음기 없는 무표정으로 가슴 속 깊은 곳에 감춰진 상처를 꾹꾹 억누르며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캐릭터를 십분 살려 낸다.



“태건호 실제 나와는 정 반대 인물…웃기고 싶어 혼났다”

진지하고 무거운 캐릭터 태건호를 연기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는 ‘웃기지 못한 것’을 꼽았다. “진지한 장면인데 웃기고 싶어 참느라 혼났다”며 너스레를 떤다. “태건호는 실제 제 성격과는 반대되는 인물입니다. 표정 변화 없이 묵직한 인물을 연기하려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죠. 제가 나오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지루해 하면 안 되는데… 웃기지 못해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털어놓더니 진짜 힘든 점은 따로 있었다고 밝혔다. 극중 아들 유민으로 나오는 배우와의 연기 호흡이었다. 실제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배우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유민에게 소리치고 욕설을 퍼붓는 그는 “유민이가 실제 상황으로 느껴 정말 마음이 아팠다”며 힘든 점을 토로했다.

“처음에는 유민이와 살갑게 촬영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못되게 해야 하는 장면이 많아 일부러 거리감을 뒀습니다. 유민이는 제가 욕하고 소리치는 것이 연기라는 것을 알지 못해 상처를 받아요. 그 점이 가장 미안하면서도 가슴 아팠습니다. 현장에 늘 유민이의 부모님이 계셨는데 우리 영화에 출연시켜 준 것에 정말 고마웠고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내 인생의 아이러니는 배우 된 것”

영화는 아이러니함으로 가득 차 있다. 국어사전에는 ‘아이러니’의 뜻을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라고 설명한다. 이는 영화에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도 아이러니로 통한다.

“영화에서 아이러니가 상당히 강조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태건호가 아닌 ‘제 삶의 아이러니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해 보면 배우가 돼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제 삶의 아이러니예요.”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갔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남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고 끼가 없다고 느꼈지만 우연히 본 연극을 통해 마음의 큰 울림을 느꼈다. 이후 대학교를 연극과로 진학했다. 그는 “이것이 삶의 아이러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더니 “배우가 된 것 말고, 제 삶에 또 한 번 아이러니가 찾아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어릴 적 상상치도 못했던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기대했다. “예를 들어 나중에 유아원을 한다거나 애견센터를 하는 거죠. 지금의 제 모습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이지만요. 그런 신선함이 제 삶에 찾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전도연 씨 같은 배우 있음 평생 묻어가고파”

정재영은 칸의 여왕 전도연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유일한 배우다.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첫 호흡을 맞췄다. 9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때와 지금의 전도연은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그때는 전도연 씨를 유심히 볼 수도 없었어요. 제가 늘 욕하고 때려야 하는 연기를 했기에 늘 죄송한 마음뿐이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이어 “당시에도 도연이는 최고의 위치였어요. 물론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여왕님이 됐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더라고요. 영화에 예쁘게 나오는 것보다는 실감 나는 연기를 펼치는 것을 더 중요시하고 자신의 연기에 오롯이 집중하는 대단한 배우입니다. 도연이를 보며 ‘이러니까 상을 받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전도연에 대한 칭찬은 끊이지 않았다. “전도연 씨 같은 배우만 있으면 (상대 배우는) 평생 묻어가며 살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우리 영화도 전도연 씨 보러 오시는 분이 10명 중 7명은 될 겁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전도연 씨를 보러 왔다가 저에 대해서도 느끼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걸 그룹 미쓰에이의 민, 처음에는 이름이 미쓰에이인 줄 알고…"

‘카운트다운’에는 걸 그룹 미쓰에이의 민이 전도연의 딸로 출연해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정재영은 민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가요프로그램을 잘 안 보는 편이라 처음에는 이름이 미쓰에이인 줄 알고 미쓰에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룹명이 미쓰에이이고 이름은 민이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이름을 몰랐다는 티를 안 내긴 했지만 눈치 챘을지 모르겠네요.”

민은 영화에서 조폭들에게 끌려가고 물에 빠지는 등 유난히 힘든 장면이 많다. “첫 장면이 전도연 씨와 맞담배를 피우는 신이더라고요. 민에게는 도연이가 대 배우일 텐데도 기죽지 않고 잘하더라고요. ‘원래 놀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죠. 춤, 노래, 연기에 있어 타고난 끼가 있는 배우입니다. 대사를 어느새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 선보이고, 또 체력은 얼마나 좋은지 가요프로그램 스케줄 때문에 힘들 텐데도 현장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정재영, 당신은 이미 그런 배우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민을 보며 자신의 삶을 반성했다”고 겸손하게 말한 뒤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제가 나오는 영화를 믿고 볼 수 있게 만드는,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설레게 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자신만 모르는 것일까. 영화가 크든 작든 장르가 무엇이든, 영화의 진중함을 농담 한 마디로 가볍게 날리며 영화 ‘신기전’을 보다 재미있는 작품으로 만든 설주와 함께 웃고 패트병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는 ‘김씨 표류기’의 남자 김 씨를 사랑하고 무서운 눈매보다 더 무시무시한 아우라(Aura)를 풍기는 ‘이끼’의 천용덕 이장에 열광하는 이유가 배우 정재영이라는 것을. 그가 나오니 표를 사고, 엔딩 스크롤이 올라갈 때 벌써 다음 연기가 보고 싶어지는 남자, 정재영은 이미 그런 배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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