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대사·소재 돋보인 정통 멜로의 진수…‘천일의 약속’이 남긴 것

연기·대사·소재 돋보인 정통 멜로의 진수…‘천일의 약속’이 남긴 것

기사승인 2011-12-21 16:28:00

[쿠키 연예] 심금을 울리는 정통 멜로드라마의 진수를 만난 즐거움은 컸다.

김수현 작가가 4년 만에 선보인 멜로드라마 SBS ‘천일의 약속’은 30대 여주인공이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결혼식 전날 파혼을 선언하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등 사뭇 파격적이고 극적인 상황이 그려졌다.

‘천일의 약속’은 지고지순한 남녀 주인공의 사랑으로 애절한 운명을 이어가는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생생한 캐릭터로 절묘한 맛을 내며 큰 사랑을 받았다.

결국 남녀 주인공이 결혼에 골인을 하고 언젠가 수애가 죽음을 맞이하며 극도의 눈물바다를 이룰 것을 시청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멜로드라마답게 끝을 알면서도 애절하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고조됐다.

사랑의 전형성은 여러 각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주인공 지형(김래원)과 수애(서연)은 희생을 뛰어 넘는 사랑으로, 노향기(정유미)는 극중 지형만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짝사랑으로 심금을 울렸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애절함을 더 했다. 지형의 엄마로 출연한 김해숙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이상적인 엄마를 그려냈다.

지난 10월 18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12.8% 기록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한 ‘천일의 약속’은 마지막 방송에서 19.8%를 올리며, 줄곧 시청률 1위를 지키며 퇴장했다.

◇ 생생하고 입체적인 캐릭터의 힘 = ‘천일의 약속’이 초반부터 큰 인기를 얻은 가장 주요한 이유는 독자적이고 생생한 캐릭터의 힘이 컸다.

치매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서연은 비련의 여주인공인지만 자신의 병으로 인해 눈물만 흘리고 아파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고뇌하고 평소 좋아하는 시를 읊으며 기억을 더듬었으며 초반에는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등의 대사를 통해 분노와 병을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지나치게 강하다 싶을 만큼 자존심이 세고 독립적인 서연의 캐릭터에는 그러한 명분이 있었다.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모친으로 인해 고모의 집에서 자라난 아픔이 있었고, 사랑한 연인마저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인 인물이었다.

또한 정을영 PD가 ‘지구상에 없는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했던 향기(정유미)도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해맑고 순수하며 ‘오빠 바보’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한 사람만을 사랑한 향기는 천진난만하며 자존심도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극중 엄마로부터 ‘칠푼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묘한 연민을 일으키며 큰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지형의 부친 박창주(임채무)와 매사에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인 오현아(이미숙)은 극의 긴장감을 이끌었고, 늘 서연 남매를 친딸보다 아끼고 보살피는 고모(오미연)과 사촌오빠 장재민(이상우)은 위로와 감동을 선사했다.

◇ ‘언어 마술사’의 독자적인 대사 = 생기있고 입체적인 대사는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당신의 삶까지 삼켜버릴 수는 없다”고 말하는 서연에게 지형은 말한다. “그래도 상관없어. 같이 있자.” 또한 “지구가 깨지나요”라는 아들의 말에 지형의 모친은 “네 아버지 우주가 무너져”라고 답한다.

김수현 작가 특유의 대사는 이번에도 돋보였다. 입체적이고 독특한 대사는 다른 드라마에서는 맛볼 수 없는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를 가리켜 ‘언어의 마술사’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범하지 않은 대사들은 극의 생기를 가져오고 신선한 환기를 선사한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낯선 대사는 오히려 드라마이기 때문에 빛나고, 오히려 명쾌함을 안긴다. 김 작가는 한 마디 한 마디 자르는 것, 쉬어가는 것까지 표시할 정도로 매우 세심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김 작가 특유의 강하고 분명하며 끊어지는 듯한 대사가 이어졌다. 수애의 낮은 목소리 톤은 이러한 대사를 날카롭지 않게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융화시켰고, 향기 엄마 오현아 역의 이미숙은 매번 소리를 지르는 신경질적인 캐릭터를 직선적인 대사를 통해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속사포 같은 대사에 재미를 느끼면서도 김 작가의 드라마는 때로 ‘피곤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김작가는 지난 10월 31일 이러한 대사에 대한 지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전했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는 “나한테 말투 고치라는 건 가수한테 딴 목소리로 노래하란 겁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내 대사가 바로 김수현이니까요.”라고 말했다.

◇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
= 절묘한 캐스팅도 드라마의 인기에 큰 몫을 차지했다.

수애는 우여곡절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으나, 점차 병세가 악화되며 기억을 잃어버리는 비운의 연기를 선보였다. 안정적인 목소리 톤과 호소력 짙은 표정 연기로 무장한 수애는 때로는 맑고 때로는 애처로운 상황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캐릭터를 소화했다.

김래원은 김 작가로부터 ‘영악하다. 여우처럼 잘 한다’라는 평을 얻을 만큼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 약혼녀 향기를 뒤로하고 연인이었던 서연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인물이지만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 초반 시청자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우직하고 지고지순한 모습을 보여주며 흔들림 없는 연기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중년 연기자들이 탄탄한 연기력은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방송 첫 회부터 실감나는 성형중독자 연기로 화제가 되었던 이미숙은 앙칼지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여 호평받았고, 김해숙은 단아하면서 이지적이고 차분함으로 모성애를 진실 되게 표현했다.

향기 아버지 역인 박영규는 코믹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날려 버리듯, 지극한 딸 사랑을 현명하게 보여줬고 임채무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사며 지지를 얻었다.

무엇보다 서연 고모로 등장한 오미연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임에도 조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때로는 공감을 때로는 함께 눈물짓게 하며 명품 연기자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연기자들의 극중 캐릭터와 딱 맞아 떨어지는 스타일은 물론 거침없고 현실적인 연기, 외유내강을 보여주는 내면 연기는 명품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는데 큰 몫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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