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쟁 나면 평양 떠나야” 외국공관에 알려

북한 “전쟁 나면 평양 떠나야” 외국공관에 알려

기사승인 2013-04-06 00:21:01
[쿠키 정치] 북한 외무성이 5일 러시아와 중국, 영국을 포함한 평양 주재 일부 외국 공관과 유엔개발계획(UNDP) 등 인도주의 단체들에게 직원 철수를 권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전후한 미사일 발사를 넘어 국지전 등 추가 도발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는 별도로 직원 철수를 권고했고, 다른 외국 공관에는 공동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외무부는 “북측으로부터 10일 이후 평양 주재 외국 공관과 국제기구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고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공보실 명의의 논평에서 “북한 외무성이 한반도 정세 악화와 관련해 평양에 있는 다른 외국 공관과 함께 러시아 대사관이 직원들을 북한에서 철수시킬 것을 제안했다”며 “모든 상황을 고려해 이 통보를 심각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는 아직 제안일 뿐이며 러시아는 상황을 더 분석한 뒤 철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주재 러시아 대사관 데니스 심소노프 공보관은 “러시아 대사관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다”면서 “평양은 현재 아주 평온하고 어떤 긴장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UNDP 관계자는 “현재 유엔본부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영국 외무부는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북한이 우리 외교관들에게 떠나라고 했다기보다는 떠날 생각이 있는지를 물은 것으로 생각한다”며 “북한의 수사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북한 외교부가 평양 주재 외교관들에게 철수를 권고했다는 사실을 일부 국가로부터 확인했다”며 “다만 들은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추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정부는 주한외교단에 대해 현재 한반도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불필요하게 동요하지 말 것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외교비서관, 국제협력비서관 등이 참석한 긴급회의를 열고 관련 내용을 분석했다. 또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실시간으로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북측이 한 평양 주재 대사관에는 전쟁 발생시 철수계획을 제출하라고 했다는 첩보도 있어 진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 중국 신화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외국 대사관들에 긴장이 고조될 경우 철수할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이례적인 철수 언급, 왜?

북한이 5일 러시아, 중국 등 평양 주재 주요 외국 공관들에게 직원 철수를 권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외교관 철수 권고는 한반도 긴장을 극대화시키고 제한적 군사조치까지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이 외교관 철수를 권고한 것은 우선 대남 및 대미 압박 수위를 고조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잇단 위협에도 남한과 미국이 계속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액션을 취하자 외교관 철수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즐겨 사용하는 ‘살라미 전술’(하나의 카드를 여러개로 나눠 단계적으로 사용하는 전술)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또 외국 공관은 물론 국제기구까지 철수를 권고한 것은 그동안 남한과 미국에 집중해왔던 전쟁 위협을 국제사회 전체로 확산시켜 실익을 얻겠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기본 전략은 위협을 조성한 뒤에 서방으로부터 지원을 얻어내려는 것”이라며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현 한반도 긴장 상황을 매우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물러나면 내부적으로 불안한 ‘김정은 체제’까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인식하에 초고강도 카드를 꺼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러나 정부와 전문가들은 북한의 위협이 실제 전면전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외국 공관들에게 직원 철수를 권고했지만 한편으로는 ‘해외 관광객 유치’라는 앞 뒤가 맞지 않은 노선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에 있는 북한전문 여행사 ‘영 파이오니어 투어즈’는 이번달에만도 100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다. 또 북한 고려항공은 최근 중국 상하이·난징,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평양을 잇는 직항로를 개설했다.

따라서 북한의 다음 카드는 미사일 발사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연일 전쟁 위협을 가하는 만큼 대외적으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미사일을 공해 상으로 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무수단급 중거리 미사일을 동해상에 실전배치해 놓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을 나흘 앞두고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만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전후로 미사일 발사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외교관 철수 권고는 한반도 정세가 엄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미로 보인다”면서도 “상황에 따라 미사일 발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2006년과 2009년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도 외교관 철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어도 국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모규엽 이제훈 기자 hirte@kmib.co.kr
김지방 기자
hirte@kmib.co.kr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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