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개발했더니 제네릭보다 싸게 팔라고?”

“공들여 개발했더니 제네릭보다 싸게 팔라고?”

기사승인 2014-06-29 13:24:55
‘열 받은’ 제약사 결국 법정행

약제의 사용량 증가에 따라 약가를 인하시키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로 제약업계의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중복적인 약가인하에 시달린 제약사와 정부의 갈등이 법정까지 이어졌다.

◇복제약보다 값싸진 오리지널 ‘스토가’

보령제약의 항궤양제 스토가(주성분 라푸티딘)는 특허만료 이후 복제약들이 출시되며 약가가 인하된 후 사용량 약가 연동제로 연달아 약가인하 타격을 입은 끝에 법정에서 약가인하의 적법성을 가르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합의13부(재판장 반정우 부장판사)는 6월 23일 보령제약이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약가인하처분취소 제1차 변론을 진행했다. 보령제약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사용량 약가 연동제에 따른 협상을 했으나 복지부가 협상 결과에 따른 약가고시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복제약보다 값싼 약가가 책정됐다는 것이 주된 쟁점이었다.

스토가는 지난해 7월 제네릭이 다수 발매되면서 기존 보험약가 290원에서 203원으로 인하됐다. 올해 3월 28일에는 사용량 약가 연동 유형 1(약가협상에서 합의된 예상 사용량보다 30% 이상 증가할 경우)에 따라 보령제약과 공단이 진행한 협상에서 기존 약가 203원에 4.9% 수준을 인하한 193원으로 조정됐다.

그러나 4월 1일에는 조정된 193원을 건너뛰고 복제약 가산기간이 끝난 이유로 203원에서 155원으로 가격이 떨어진 뒤, 사용량 약가 협상 결과(4.9%)가 반영돼 147원까지 추가로 떨어지게 됐다. 보령제약과 공단이 합의한 내용을 복지부가 수용하지 않고 복제약 가산기간이 끝난 금액에 사용량에 따른 인하율을 적용한 것.

이에 법정에서 보령제약 대리인 법무법인 태평양 측은 “복지부가 공단 이사장에게 협상 권한을 위임한 것과 다름없으면서 협상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복지부 대리인 법무법인 우면 측은 “협상된 상한가대로 고시할 법적 의무가 없고, 건강보험제도를 주관하는 복지부 입장에서는 절차 진행 중 하자가 있는 부분은 바로잡는 것이 당연한 직무”라고 반박했다.

이 밖에도 2013년 12월 31일 개정된 신 요양급여규칙에 따라 사용량이 아닌 청구금액을 기준으로 약제의 상한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과, 협상 대상이 약제의 상한금액인지 인하율인지 여부 등이 쟁점으로 부각됐다.

특히 보령제약 측은 155원 수준인 복제약 가격보다 오리지널이 더욱 낮은 147원 수준에 책정된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해외도입 신약이지만 국내 허가를 위한 임상비용과 적응증 추가 비용 등 약 50억원이 투자됐는데 무임승차한 제네릭보다 낮은 가격은 신약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며,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복지부 측은 “오리지널이라고 무조건 제네릭보다 비싸라는 법은 없다”며 사용량 약가연동 인하 전체 89품목 중 스토가를 포함한 8개 품목은 오리지널보다 제네릭이 비싸졌다고 설명했다. 또 오리지널은 이미 특권적 지위를 누렸고 의사들 또한 처방을 쉽게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제네릭보다 가격이 낮다고 불리하지는 않다고 부연했다. 다음 변론 기일은 7월 15일로 결정됐다.

◇모티리톤·카나브도 ‘부글부글’

스토가는 제네릭 출시와 가산기간 종료, 사용량 연동 인하로 약가가 급락한 특수 사례지만 다른 의약품들도 고민은 많았다.

동아ST의 모티리톤은 시장에 진입하고 1년 만에 사용량 약가 연동제가 적용된 경우다. 모티리톤의 기등재가는 160원이었으나 사용량 약가 연동제의 최종 협상가는 154원으로 결정됐다. 일괄약가인하로 대체약제(Itopride 등)의 약가가 매우 낮게 형성된 상황에서 유형 1에 적용돼 협상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특히 협상 당시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원가검토보고서를 171원 수준으로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제품 개발을 위해 R&D 투자가 이뤄져 원가가 높은 상황임에도 대체약제의 약가가 낮아 결정 상한가가 떨어진 것이다.

제약협회 공정약가정책팀 이상은 선임연구원은 ‘국내개발신약 보험등재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결국 이중의 약가인하가 발생해 국내 개발신약의 가치를 떨어뜨렸고 연구개발(R&D) 투자비 회수는 물론 추가 임상에 필요한 투자의 불확실성도 가중됐다”고 꼬집었다.

보령제약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도 지난 3월 사용량 유형 1에 의해 기존 807원에서 781원으로 조정(120mg 기준)됐다. 이 연구원은 “중국과 수출 계약을 체결한 카나브가 차후 국내 약가의 인하가 발생하면 발매 시점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 추진으로 원개발국에 등록된 보험약가를 반영할 계획인데, 카나브가 올해 1월 중국과 수출계약을 체결했으나 사용량 연동 등으로 약가인하가 지속되면 중국 내 발매 시점인 2017년경에는 약가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국내 개발 신약이 R&D 투자비와 개발원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보험 등재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가격에 혁신가치가 반영되지 않으면 국내기업들이 신약에 대한 R&D 투자를 지속할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건보공단, 제약계 달래기 통할까

‘사용량 약가 연동제’에 대한 제약업계의 불만이 쏟아지는 가운데 공단은 이 같은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각 유형별 약제 분석 세부계획을 매년 수립하고 분석대상 약제와 분석일정 등을 공개키로 했다.

공단이 발표한 ‘사용량 약가 연동 협상 세부운영 지침(안)’은 사용량 약가연동 대상 약제의 유형, 청구액 분석, 협상참고가격 등 기준에 대한 세부사항을 정했다(유형 1, 3, 4는 유형 가, 나, 다로 명칭 변경).

먼저 유형별 청구액 분석기간을 명확히
했다. 유형 가는 매년 동일제품군 중 최초 등재된 제품의 등재일로부터 1년 되는 시점, 유형 나는 매년 유형 가에 따라 동일제품군의 상한가가 조정된 일로부터 1년 되는 시점, 유형 다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기간이다.

대체약제 설정 및 재정영향 판단에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주장은 일부 반영, 재정영향 분석 및 대체약제 선정기준 등 참고산식 보정 요소들을 명시했다. 협상 참고가격 기준은 각 산식을 구체화했으며, 특히 상한가는 협상 명령일 당시 약제급여목록표상의 금액으로 하며 협상기간 중 상한가에 변동이 있는 경우 변동된 금액을 상한가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상한가에 변동이 생긴 후 사용량 약가 인하를 적용해 논란이 된 스토가 사례에 비춰 구체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협상 결렬 시 재협상 절차, 환급액 환수절차, 협상 제외약제 등을 명시했다. 최종 지침안은 7월 적용을 목표로 이달 중순까지는 나올 예정이다. 건강보험공단 보험급여실 이종혁 차장은 “그동안 업계와 간담회를 통해 수렴된 내용을 조율해 반영했다”며 “명확하지 않고 투명치 않았던 부분들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또 사용량 약가 연동과 관련해 원가를 인정해달라는 부분은 “사용량과는 상관없는 부분이라 원가가치가 논의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으며, 다른 약가인하 기전과 중복인하 문제는 “사후관리 기전이 여러 개 있는데 각각이 대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중복인하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이번 세부지침에 대해 제약협회 측은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업계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세부적 상황에 대한 이견은 약가제도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의견을 개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김지섭 기자 jskim@monews.co.kr
송병기 기자
jskim@monews.co.kr
송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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