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어디까지 겪어봤니?②] 을 중의 을, 연습생 “성상납까지도 내몰린다… 거부하면 쫓겨나”

[갑질, 어디까지 겪어봤니?②] 을 중의 을, 연습생 “성상납까지도 내몰린다… 거부하면 쫓겨나”

기사승인 2015-01-08 16:45:55
사진=국민일보 쿠키뉴스 DB / 사진과 기사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가수와 팬 뿐만 아니다. 가요를 만드는 뒤에서는 좀 더 많은 ‘갑질’이 벌어진다. 인기를 기반으로 돈을 버는 일들이니만큼 인기 때문에 벌어지는 갑질은 상상 이상이다.

인기 작곡가 섭외, 난항에 난항… “내 곡은 무조건 타이틀로”

그룹 A는 멤버들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매번 놀랍기 그지없는(?) 곡을 들고 컴백해 팬들을 힘겹게 한다. 그룹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대중성 넘치고 좋은 곡을 골라서 컴백할 만도 한데 매번 타이틀곡이라고 내놓는 노래들이 대중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뭘까. 바로 작곡가의 ‘갑질’ 때문이다.

최근 음원사이트를 통해 음악을 듣는 문화가 확산되며 인기 작곡가들은 가수들에게 곡을 줄 때 반드시 “내 곡은 타이틀 곡으로 해 달라”고 주문한다. 저작권료 때문이다. 가수들이 활동하는 타이틀곡이냐, 앨범 수록곡이냐에 따라 음원수익은 확연하게 갈린다.

“타이틀곡 할 거 아니면 곡을 안 주겠다”며 곡을 들려주지도 않는 작곡가들 때문에 가수들은 작곡가의 네임 밸류만 믿고 계약을 먼저 한다. 다른 그룹에게 줬던 곡이 좋으니 이번 곡도 히트하겠지, 라는 믿음도 있다. 그러나 막상 받은 곡을 들어보면 타이틀은커녕 수록곡으로 쓰기도 힘든 퀄리티의 곡들이 내려오는 일이 흔하다. 곡에 지불한 돈도 아까울 노릇이지만 타이틀로 쓰겠다고 약속을 해놨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도 결국 자체 제작팀의 편곡 등을 거쳐 그 곡을 타이틀로 쓴다. 혹시나 ‘대박’을 기대하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인기 작곡가들과의 인연 유지를 위함이다. 이번만 활동하고 끝낼 것은 아니기에.

“막내 매니저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왜일 것 같습니까

신입 매니저 구하기가 ‘미션 임파서블’이란다. 최근 연예 기획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소속 연예인들의 일정은 많은데 그를 따라다닐 매니저들의 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을 뜯어보면 신입 구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너무 당연하다. 활동 중인 인기 그룹의 매니저 B의 하루를 살펴보면 답은 나온다.

B의 근무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18시간 정도다. 가수가 오전 5시에 일어난다면 매니저는 4시에는 일어나 일정을 바지런히 챙겨야 한다. 가수들은 차 안에서 눈이라도 붙이지만 매니저들은 운전을 해서 가수들을 무사히 모셔야 한다. 인기 가수라면 경호도 겸해야 하고, 심부름도 해야 한다. 주말은 당연히 없다. 365일, 24시간 주말 없이 들쑥날쑥하게 일한다.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5시간 남짓. 그러나 받는 돈은 한 달에 고작 80만원 정도다. 그나마 큰 기획사들은 100만원 초반부터 시작한다.

그런 매니저들의 고용 조건은 어떻게 될까. 구인구직 사이트에 떠 있는 한 기획사의 채용요건을 살펴봤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외국어 능통자 / 4년제 대졸 / 1종 운전면허 보유자가 기본 요건이다. 한글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외국어 능통자를 하루 18시간 굴리면서 한 달에 100만원이라니, 구하기 힘든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을 중의 을, 연습생… 연예인 지망생들의 악착같은 분투기

매니저, 가수, 팬들이 저마다 아웅다웅, ‘을’임을 논하지만 을 중의 을은 따로 있다. 바로 기획사 연습생들이다. 가수 지망생들을 통틀어 말하는 ‘연습생’들은 대부분의 가요 기획사들에 존재한다. 10대 초반에서 후반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이들은 자의로 기획사에 몸담게 되지만, 자의로 나가지는 못한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도 가지 않고 연습에 매진한다.

유명 기획사 연습생 출신 배우 C씨(23)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을 누를 만큼 연습생 생활은 갑질의 연속이었다”고 털어놨다. 연습생들의 생활은 연습만으로 점철돼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C씨를 비롯한 연습생들은 기획사 직원들보다 더 빠른 시간인 아침 8시에 출근해 연습실을 포함한 건물 청소를 도왔다. 지각이라도 하면 지각비를 내야 했다. 직원들 심부름은 예삿일이었다.

연습에 빠지거나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신인개발팀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 맞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언제 가수 될 거냐”라는 윽박지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기획사 연습실에 나오는 친구들도 많았다. C씨는 중도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가 연습생 생활을 그만둔 후 검정고시를 봤다. 그만두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C씨가 기획사를 나오려 하자, 회사에서는 “그동안 네게 들어간 비용은 어떻게 할 거냐”며 연습생 비용을 요구했다. 결국 C씨는 부모님께 손을 벌려 430여만원을 몸담고 있던 기획사에 내고 자유의 몸이 됐다.

데뷔한 친구들이라고 연습생 비용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것이 C씨의 설명이다. C씨와 함께 연습하다 데뷔한 그룹 D의 멤버들은 데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수익 정산을 받지 못했다. 기획사가 멤버들의 연습생 기간별로 연습비를 물렸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연습기간이 긴 한 멤버는 연습비를 반도 갚지 못해 개인 활동에 매달린다.

그나마 돈만 물리면 다행이다. 일례로 2011년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의 장석우 대표가 소속사 연예인 지망생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C씨는 “기획사의 투자자들에게 성상납을 하라며 내몰리는 예도 있다”며 “데뷔만 바라보는 연습생들은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부하면 그동안의 연습비용을 물리는 것은 물론 기획사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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