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빅히어로’ 김상진 감독 “‘역시 디즈니’란 생각 항상해”

[쿠키人터뷰] ‘빅히어로’ 김상진 감독 “‘역시 디즈니’란 생각 항상해”

기사승인 2015-01-17 19:24:55
사진=올댓시네마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 ‘볼트’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주먹왕 랄프’ ‘겨울왕국’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상진 캐릭터 디자인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1995년 디즈니에 입사해 20년 동안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지난해 전 세계 열풍을 일으킨 ‘겨울왕국’에서는 엘사와 안나의 어린 시절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빅 히어로’(감독 돈 홀)는 그가 처음으로 캐릭터 디자인 수퍼바이저를 맡은 작품이다. 한국인들이 디즈니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그의 디자인 실력이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제가 작업한 캐릭터가 사랑받는 이유요? ‘워낙 디자인을 훌륭하게 잘해서가 아닐까’하는 건방진 생각을 해봅니다(웃음). 물론 그런 건 아니겠죠.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힘 아닐까요? 아무리 완벽한 디자인이라고 해도 캐릭터가 관객하고 감정을 나누지 못하면 쓰레기나 다름없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겁니다. 공감할 수는 캐릭터에 디자인까지 훌륭하다면 겨울왕국 같은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거죠.”


‘빅 히어로’에서 김상진 슈퍼바이저는 모형제작자, 기획자,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2D 디자인을 CG를 통해 캐릭터의 시선, 얼굴 표정 등이 완벽하게 전환되도록 했다. 캐릭터 디자인과 컴퓨터 그래픽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영화는 천재 공학도 형제 테디와 히로가 만든 힐링 로봇 베이맥스가 가장 사랑스러운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로 주인공 히로를 꼽았다. 베이맥스를 작업하면서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늘 그렇듯이 메인캐릭터가 가장 어려워요. 제일 손이 많이 가죠. 특히 히로는 초기 콘셉트 디자인이 지금보다 굉장히 단순하고 유니크한 헤어스타일 가지고 있었어요. 2D에서 3G로 옮길 때 원래 콘셉트를 최대한 살리면서 구현하는 게 쉽지 않아요. 도전이 많은 작업이었죠.”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캐릭터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어렵다”는 김 슈퍼바이저. 그래서 부드럽고 푹신한 풍선 재질의 베이맥스는 손길이 많이 갈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질감을 살리면서 거대한 몸집의 베이맥스를 사랑스럽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도 “단순함”이라고 답했다.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처음 사람들이 물체를 봤을 때 눈으로 확인하는 게 실루엣이다. 실루엣이 먼저 눈에 들어온 다음에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캐릭터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처음 딱 봤을 때 ‘어떤 캐릭터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는 단순한 형태를 찾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빅 히어로에는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를 모티브로 한 ‘고고’ 캐릭터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이러한 설명이 빠졌지만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캐릭터다. 재미 교포 김시윤 수석 캐릭터 디자이너가 고고를 비롯해 주요 캐릭터들의 스타일과 최종 디자인을 맡았다.

김 슈퍼바이저는 고고에 대해 “김시윤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한국인으로 설정하고 작업했다. 제작자 존 라세터가 굉장히 좋아했다”고 귀띔했다. 목소리 연기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제이미 정이 했지만 외모는 배우 배두나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캐릭터 디자인 작업은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약 1초 만에 지나가는 장면 하나에도 공을 많이 들인다.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자그마한 디테일까지 신경을 쓰는 것이다. “역시 디즈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회사를 자랑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처음 들어와서 지금까지 느낀 게 ‘디즈니가 이래서 디즈니일 수밖에 없구나’하는 거예요. ‘대충 넘어가도 일반 관객들한테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어떤 논리가 있어야 돼요. 왜 그 화면에 담겨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거치죠.”

하지만 디즈니는 꽤 긴 시간 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2006년 디즈니와 픽사가 합쳐지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애니메이터 출신인 존 라세터 픽사 회장이 디즈니를 이끌면서 회사는 경영진이 아닌 아티스트 중심으로 돌아갔다. 열린 공간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게끔 바꾸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거나 떠나고 싶어 했다. 나 또한 그랬다”는 그는 “원래 디즈니에서는 아티스트들 하고 어떤 소통이 없었다. 레스터가 들어오면서 모든 권한과 책임이 감독 중심으로 돌아갔다. 권한만큼 책임도 주는 것”이라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소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방 그렇게 된 게 아니다. 라세터의 손길을 거친 작품 중 처음 몇 개는 크게 성공을 못했다. 기반이 돼 몇 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며 “원래 회사에 들어가면 하루 일과가 끝날 때까지 다른 부서 사람들과 마주치기 참 어려웠다. 그런데 오픈 된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지금처럼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변화는 ‘빅 히어로’에도 많이 반영됐다. 디즈니가 최초로 마블 코믹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이다. 그는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했다고 들었을 때 굉장히 기뻤다”며 “처음 들었던 생각이 ‘마블 캐릭터 가지고 애니메이션 한 번 만들어보자’였다. 홀 감독이 실현시킨 것”이라며 디즈니가 가지고 있는 전통 안에서 항상 새로운 걸 만들려고 많은 시도를 한다고 말했다.

“디즈니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을 쭉 나열해보면 스타일이 굉장히 다양해요. 시도는 감독의 아이디어에 달린 거예요. 그 사람들이 뭘 해보겠다고 하면 기회를 줍니다. 굉장히 유연한 조직이죠. 이런 게 디즈니의 큰 변화입니다.”

1년에 한 번 씩 한국을 찾는다는 김 슈퍼바이저. 그런데 이번엔 좀 남다르단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에 작업한 영화 ‘빅 히어로’를 가지고 와서 “자랑스럽고 설레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3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디즈니에 입사해 색약을 극복하고 캐릭터 디자인 총괄을 하기까지. 힘든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색약’이라는 자신의 핸디캡이 걸림돌이 됐다고 느낀 적은 없다고 했다.

“장애를 극복했다거나 인간승리처럼 묘사되는 부분이 사실 좀 그래요. 색약 때문에 미대를 가지 못했지만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죠. 누구나 한두 가지씩 자그마한 핸디캡을 가지고 있잖아요. 핸디캡으로 잠재적인 가능성,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문제가 되겠지만요.”

최지윤 기자 jyc89@kmib.co.kr
최지윤 기자 기자
jyc8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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