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가짜 방화복’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아직도 소방장갑 사서 씁니다”

[친절한 쿡기자] “‘가짜 방화복’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아직도 소방장갑 사서 씁니다”

기사승인 2015-02-16 16:15:55

[쿠키뉴스=김민석 기자] 불이 나거나 사고로 곤경에 처하면 가장 먼저 누굴 찾나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119에 전화를 건 후 한시라도 빨리 소방관이 오길 기다립니다.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우리를 구하러 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소방관들이 처한 현실은 왜 열악하기 짝이 없는 걸까요. 15일 소방관들에게 안전성 성능 검사를 받지 않은 ‘가짜 방화복’이 보급됐다는 보도가 나와 공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쿠키뉴스가 지난해 5월 일선 소방공관들이 소방장갑 등 방호 물품을 자비로 구입한다고 보도하면서부터 입니다. 당시 소방관들은 “활동화가 다 떨어져서 신발을 지급해 달라 요청하니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라거나 “화재진압 장갑을 6개월 쓰면 너덜너덜해지는데 현재 3년째 쓰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한 소방관의 아내가 “남편이 소방관인데 장갑이 없어 사주려 한다”며 “아마존에서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문의해 눈길을 끌기도 했죠.

당시 익명의 소방관 A씨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실제로 동료들이 인터넷을 통해 장비 구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워낙 장비가 부족하다 보니 소방공무원들 사이에서 동료의 장비를 몰래 가져가는 일도 발생한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소방관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습니다, 대학생 등 일부 네티즌들은 직접 모금 운동을 벌이며 소방관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었죠.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 나아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A씨는 16일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또다시 출연해 “그 이후로도 장갑이 보급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전 구멍이 난 장갑을 쓰고 있다”며 “장갑에 구멍이 있으면 물이 들어오고 뜨거운 물이 손에 들어오면 화상을 입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진행자가 “왜 지급이 안 되느냐. 조금 더 기다리라는 상황이냐”고 물었더니 “언급조차 없다”고 하네요.

A씨는 ‘가짜 방화복’ 논란 대해서도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구형 방화복은 220도 정도를 견딘다”며 “그러나 화재 현장은 최고 300도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소방관이 거기서 실질적으로 화상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신형 방화복을 받지 못한 소방대원들은 아직도 구형을 쓰고 있다. 이번 가짜 방화복 논란도 신형 방화복이 보급되는 와중에 터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수방화복은 소방관의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 같은 장비입니다. 400도 이상의 열에도 견뎌야 하는 등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엄격한 품질 기준을 충족해야 하죠. 소방관의 목숨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검사를 통과한 제품은 합격 날인이 찍혀 일선 소방서로 납품되는데 조사 결과 소방서에 납품된 방화복 수와 기술원 측이 합격을 인증한 방화복 수량이 다르게 나온 것입니다. 검사를 받지 않은 제품이 공급된 것이죠.

A씨는 “소방조직이 수백 개 지자체 소속으로 쪼개져 있어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소방조직이 단일화돼 목소리를 한곳에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흐지부지돼버린 소방공무원에 대한 국가직 전환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 (중략)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어느 미국 소방관이 썼다는 기도문입니다. 오늘도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불길 속으로 뛰어듭니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방화 장비를 들고 불과 맞서라는 것은 군인에게 가짜 총을 주고 전장에 나가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국가는 국민들이 신뢰하는 소방관에게 믿음을 주고 있는지, 또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참담할 뿐입니다.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기자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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