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재용에 5억원 손해배상 소송…9년만에 칼 뽑았다

국민연금, 이재용에 5억원 손해배상 소송…9년만에 칼 뽑았다

기사승인 2024-09-25 12:09:25
국민연금공단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피해를 봤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5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 법인을 비롯한 이 회장,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등을 상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각각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소송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소송은 내년 7월인 소멸시효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졌다. 소송가액은 5억100만원이다. 다만 향후 소송 과정에서 실제 피해 금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하면 청구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참여연대는 국민연금의 손해액을 5200억~675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번 소송의 발단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물산은 지난 2015년 7월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결의했다. 양사의 합병 비율은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로 하기로 결정했는데, 삼성물산 1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이에 동의했다.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 중이었던 국민연금은 당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 특별결의로 진행되는 합병안은 주총 참석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찬성이 없었다면 합병이 불가능했다.

이후 ‘국정농단’ 특검 수사에서 국민연금은 손해가 불가피함에도 박근혜 정부의 외압으로 합병에 찬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합병 비율을 삼성 일가에 유리하도록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게, 제일모직의 가치는 높게 책정됐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들은 뇌물 제공 등의 혐의로 지난 2021년 1월, 문 전 장관 등은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2022년 4월 각각 유죄가 확정됐다. 

미국계 자산운용사 엘리엇과 메이슨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을 통한 국제중재를 잇달아 제기했다.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지난해 6월 엘리엇에 약 1300억원, 올해 4월에는 메이슨에 약 800억원을 각각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들보다 삼성물산 지분이 많았던 국민연금은 손해를 봤음에도,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합병 관련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민변 민생경제위원회·참여연대는 지난해 6월 논평을 통해 “엘리엇 측의 ISDS 승소로 인해 삼성물산 합병 비율이 부당하게 책정됐고, 그로 인해 주주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는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손해를 입은 것 역시 분명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면서 “국민노후자금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9년 만에 소송을 제기한 만큼, 국민의 연금보험료로 운영되는 국민연금공단이 뒤늦게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진영주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관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연금개혁 브리핑에서 “합병이 제기된 시점을 따지면 소멸시효가 내년 7월이지만, 보수적으로 보면 올해 12월”이라며 “보수적인 시점에서 소멸시효를 고려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소송가액과 관련해선 “5억100만원은 최소한으로 추정한 비용”이라며 “소송 과정에서 여러 선정 방식, 전문가 감정 등을 고려해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진 정책관은 “기금 관리를 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해선 이번 계기로 더욱 충실하게 기금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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