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정미 한솔교육연구원 원장
과자를 손에 쥔 아이는 아예 대형마트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한다. 엄마가 단호하게 혼을 내려는 찰나, “우리 새끼 누가 울렸누, 할미가 사줄게 어여 가자”며 할머니가 등을 토닥이자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벌떡 일어난다. 아이는 엄마 눈치를 살피면서도 슬그머니 과자 몇 개를 더 품고 할머니 손을 잡는다.
명절마다 마트 등에서 곧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집에서는 안 그러던 아이가 할머니만 만나면 떼를 쓰고 요지부동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는 아는 것이다. 가족의 위계를. 자신을 잘 받아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으면 엄마아빠가 쉽게 자신을 혼내지 못한다는 것을.
하필 가족, 친지가 모인 명절에 아이가 떼를 쓰면 난처하다. 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이의 그런 행동의 이유는 부모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찾아야 한다. 아이를 훈육할 때 정작 아이가 귀와 마음을 닫고 있다면 평소 부모와의 신뢰 관계가 어땠는지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훈육의 효과는 ‘행위의 강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아이와 평소 맺고 있는 ‘믿음’의 정도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훈육을 하려면 아이와 미리 행동범위를 약속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 집에 갔을 때, ‘엄마가 OO하면 이렇게 하기’, ‘할아버지에게 OO(행동) 지키기’등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아이의 행동에 대한 가이드를 주는 셈이다. 이처럼 기준이 있으면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다.
이는 또한 ‘이렇게 하면 엄마는 좋겠어’라는 사랑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아이의 행동패턴(‘아이가 이럴 것이다’)과 발달수준(‘아이는 이렇게 할 수 있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몇 가지를 더 주의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훈육을 할 수 있다.
우선 훈육 시 아이의 안전, 건강, 가족의 가치, 사회적 규칙 등 분명한 기준을 정해두자. 가령 새로운 장소에서 아이가 갑자기 달아나거나, 뜨거운 불에 손을 대는 등의 행동은 아이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
둘째, 아이의 발달 수준에 맞춰 훈육해야 한다. 두살배기가 물을 흘리거나 교회에서 떠드는 것을 두고 훈계하는 것은 맞지 않다. 아이의 연령과 상황에 따라 알아듣고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좋다.
셋째,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땐 바로 꾸짖되 정도를 지켜야 한다. “지금은 급하니까 이따 보자”라던가 “집에서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훈계할 때는 몸과 마음이 상처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매를 들거나 “너는 항상 약속을 지키지 않지”라는 식의 정서적으로 상처가 되는 훈계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기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린다. 신뢰가 없는 부모의 말은 권위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넷째, 아이를 혼낸 뒤에는 반드시 달래주자. 어떤 학자는 이런 행동이 아이를 버릇없게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훈계 뒤 사랑과 애정 표현을 통해 아이는 비로소 부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잘못을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을 미워해서 혼낸 것이 아닌 ‘특정 행동’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아이를 달랠 때는 그냥 안아주기만 하면 된다. 지난 일을 끄집어내며 “안 그럴 거지?”, “또 그러면 혼난다”라는 확인은 하지 말자. 말없이 다정한 포옹만 해도 아이는 스스로 잘못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때때로 단순하게 ‘그저 엄마와 얼마나 가까운가’라는 물리적인 거리로 사랑을 가늠한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떼를 쓰기도 한다. 또한 아이는 자신이 믿는 사람의 말을 더 잘 듣는다. 그래서 모든 훈육은 부모와 아이의 신뢰관계가 중요하다. 반응육아는 그 신뢰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발걸음이다. 아이가 선택하는 것, 아이가 하는 것을 부모가 먼저 인정할 때 아이는 부모를 믿고 따른다. 어른이 “하지 말라”고 하면 일시적으로 멈출 수는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다. 아이의 행동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아이의 내재적인 동기를 움직여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상황과 상대방의 의도에 맞게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도록 말이다. 이것이 믿음을 바탕으로 한 훈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