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길었던 만큼 쓸쓸한 죽음도 많았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그림자

설 연휴 길었던 만큼 쓸쓸한 죽음도 많았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그림자

기사승인 2015-02-23 17:30:55

"[쿠키뉴스=김민석 기자] 이번 설 연휴 동안 전국 곳곳에서 독거노인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랐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자만 형편이 여의치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지쳐 극단적 선택을 감행한 것이다.

경영난 겪던 봉제공장 대표, 설 앞두고 숨진 채 발견

설을 앞두고 직원들의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해 괴로워하던 40대 봉제공장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6일 오전 8시 50분쯤 부산시 부산진구의 한 봉제공장에서 A(42)씨가 옷걸이에 목을 매고 숨져 있는 것을 종업원이 발견해 신고했다.

A씨의 옷에선 “가족과 직원들에게 미안하다. 회사를 살려보려고 했지만, 한계인 것 같다. 설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족에게 미안하다. 다음에 태어나면 열심히 살겠다”고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친구에게 마지막 메시지 ‘잘 있어라’

설 연휴 첫날 친구에게 ‘잘 있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실종됐던 50대가 3일 만에 차량 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숨진 채 발견됐다.

21일 오전 11시20분쯤 연천군 신서면에서 B(54)씨가 차량 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최근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신변을 비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거제 일가족 5명 참극… 풀리지 않는 의문들

설 연휴 친척 집에 가던 일가족 5명이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일 오전 4시5분쯤 거제시 둔덕면 한 도로 갓길에 세워진 산타페 차량에서 C(39)씨, C씨의 아내(39), 딸(9), 쌍둥이 아들(6) 등 5명이 피를 흘린 채 숨져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경찰은 전날인 19일 오후 6시40분에 부산 동래구에 사는 친척들이 이들과 연락이 끊겼다며 신고해 수색을 벌여왔다.

거제에 사는 이들 가족은 설 연휴를 맞아 부산으로 가던 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차량 내부에서 흉기가 발견됐으며 차량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1차 부검 결과를 토대로 C씨가 아내와 세 자녀에게 수면유도제를 먹인 뒤 흉기로 살해한 후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서류상 확인된 1억 5000만원의 빚 이외에 여러 곳의 대부업체에서 5000여만원 이상을 빌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빠 이제 간다” 아내와 다툰 후 술에 취해 실족사

20일 오전 11시20분쯤 경북 경주시 황성동 형산강 상류에서 D(56)씨가 물에 빠진 채 숨져 있는 것을 산책 나온 시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D씨는 지난 18일 오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내와 다툰 후 집 밖으로 나왔다.

경찰은 술에 취한 D씨가 강가를 걷다 발을 헛디뎌 깊이 1m가량의 물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D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이제 간다”는 말을 남긴 후 소식이 끊겼다.


저수지에서 잇따라 발견된 姆仔 시신… 어떤 사연이 있기에

경북의 저수지 두 곳에서 모자 관계인 40대 여성과 6세 남자아이가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21일 오전 10시49분쯤 청도군 청도읍의 한 저수지에서 E군(6)이 물에 빠진 채 숨져 있는 것을 낚시하러 온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이날 오후 6시쯤에는 이곳에서 10㎞가량 떨어진 경산시 남천면의 한 저수지에서 E군의 엄마인 F씨(46)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에 거주하는 F씨는 이날 오전 5시40분쯤 승용차에 E군을 태우고 청도에 들어왔다가 오전 9시11분쯤 홀로 경산 방면으로 빠져나갔다.

경찰은 “우울증을 앓고 있던 F씨가 남편이 자고 있는 틈을 타 몰래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며 “사건 경위를 정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퇴직 앞두고 불면증 앓아 온 경찰 간부도… 도대체 왜?

퇴직을 앞둔 경찰 간부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21일 오전 7시 쯤 대구시 동구 율하동 하수종말처리장 인근 가로수에 대구 동부경찰서 소속 G경감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G경감의 시신에 별다른 외상은 없었고 자택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G경감이 올해 퇴직을 앞두고 심각한 불면증을 앓아왔다는 유족들의 말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정확한 동기와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부패 진행된 시신으로 발견된 독거노인

21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한 연립주택 지하 1층 단칸방에서 H(76)씨가 숨져 있는 것을 H씨 누나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H씨는 이불을 덮고 있었으며 이미 부패가 진행돼 숨진 지 수일이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H씨 누나는 지난 19일에도 설을 맞아 이곳을 찾았지만, 문이 잠겨져 있어 미리 마련한 음식을 놓고 갔다. 그러나 이날 다시 찾았을 때도 음식이 문 앞에 그대로 놓여 있자 열쇠공을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가 숨져 있는 H씨를 발견했다.

H씨는 평소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독거노인들의 쓸쓸한 죽음 잇따라

22일 오후 2시쯤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I(75·여)씨가 숨져 있는 것을 조카(54)가 발견해 신고했다.

조카는 “보통 명절 전에 전화를 드리는데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면서 “뒤늦게나마 찾아갔더니 고모가 엎드려 쓰러진 채 숨을 쉬지 않았다”고 말했다.

I씨는 오래전 이혼한 뒤 홀로 살아왔으며, 자녀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오후 2시쯤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의 한 다가구주택 1층 원룸 방안에서 J씨(63)가 엎드린 채 숨져 있는 것을 그의 여동생이 발견해 신고했다.

여동생은 “설을 맞아 만둣국이나 같이 먹자고 전날 연락했는데, 오늘 갑자기 전화가 안 되고 문도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

J씨는 수년 전 이혼한 뒤 자녀와 떨어져 홀로 지내며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J씨가 스스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직장 구하지 못한 30대 남성, 나뭇가지에 목 매 달아

절정에 이른 취업난. 취업하지 못하면 부모를 뵐 면목이 없는 죄인이 된다. 그래서인지 설 연휴 마지막 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22일 오전 10시45분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 까치산근린공원에서 K(33)씨가 나뭇가지에 묶인 전깃줄에 목이 매여 숨진 채 발견됐다.

K씨는 전날 오전 9시쯤 일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귀가하지 않았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K씨가 특별한 직업이 없는데도 직장에 다니는 척했고, 우울증 증세를 보여왔다”는 가족의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비슷한 시각 20대 여성이 한강에 뛰어들었다. 22일 오전 10시52분쯤 서울 동호대교에서 투신한 L(29·여)씨는 불과 5분여 만에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5시간 만인 오후 3시50분쯤 숨을 거뒀다.


배우자 두고 홀로 떠난 이들

22일 오후 2시5분쯤엔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한 빌라 다용도실에서 M(58)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고, 오후 3시 25분에는 성북구 정릉동의 한 주택에서 N(42·여)씨가 역시 목이 졸린 시신으로 발견됐다.

M씨와 N씨의 시신은 각각 아내와 남편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두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을 비관해 스스로 목을 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세계랭킹 8위 국가대표 당구선수 김경률, 숨진 채 발견

설 연휴 마지막 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를 지냈던 세계랭킹 8위의 당구선수 김경률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김경률이 22일 오후 3시쯤 고양시 화정동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11층 방 창문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밝혔다.

대한당구연맹은 23일 “베란다 정리 중 실족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당구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경률은 설 연휴를 맞아 당구 선배들에게 ""선수로서의 새 삶을 찾겠다""라며 전화 연락을 돌렸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김경률의 빈소는 명지대 일산병원으로 발인은 오는 26일이다,

이렇듯 설 연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많았다. 설 연휴라서 안타까운 죽음들이 유독 많았던 걸까. 통계를 살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살률 1위’ 자리를 10년 넘게 지키고 있다. 하루 평균 자살자 수가 무려 40여명에 달한다. 명절 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느끼는 것은 그냥 지나치던 일들을 주목해서가 아닐까.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기자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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