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도, 시민도 ‘걱정’하는 임산부 배려석…왜?

임산부도, 시민도 ‘걱정’하는 임산부 배려석…왜?

기사승인 2015-08-03 07:10:55
사진=서울시 제공

[쿠키뉴스=이다겸 기자] 지난 23일부터 지하철 2호선과 5호선 2884개 좌석에는 새로운 임산부 배려석 디자인이 시범 적용됐다. 서울시는 시민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디자인을 전체 열차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기존 임산부 배려석에는 열차 벽에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의미의 스티커만 붙어있었다. 하지만 해당 좌석에 승객이 앉을 경우 임산부 배려석을 의미하는 스티커가 가려지는 등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출·퇴근 시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A씨(여·20대)는 “사실 사람이 앉아 있으면 임산부 배려석 스티커가 잘 보이지 않는다. 또 출·퇴근 시간대에는 사람이 많아 좌석 앞에 서 있다가 자리가 나면 바로바로 앉는 상황이라 특별히 임산부 배려석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앉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석과 등받이를 눈에 띄는 분홍색으로 꾸미고, 등 뒤에도 허리를 짚고 있는 임신 여성을 형상화한 픽토그램 스티커를 붙여 임산부 배려석이 제대로 운용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내놨다.

티가 나지 않아 노약자석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초기 임산부들은 대체로 이러한 디자인 변화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바뀐 디자인의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A씨는 “해당 좌석 디자인이 분홍색으로 바뀌면 지금보다는 임산부들이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상황이 될 것 같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좌석이 너무 튀어서 ‘임산부가 없을 때에도 그 자리에 못 앉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가 있을 때 우선적으로 양보하는 자리지 일반 시민들이 앉으면 안 되는 자리는 아니지 않나”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B씨(30대) 역시 A씨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B씨는 “사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주변의 시선 때문 아닌가. 그런데 아예 의자를 분홍색으로 만들어놓으면 나 같은 남자는 주변에 임산부가 없더라도 눈치가 보여 앉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임산부 배려석이 임산부에게 양보가 안 되고 있는 현실 개선을 위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꾼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노약자가 없을 때에도 노약자석 이용에 눈치를 보게 되는 한국 정서상 또 하나의 비효율적 공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바뀐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취지는 좋지만 자칫 부담스러운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신을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작년에 아이를 출산했다는 C씨(30대)는 바뀐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다”며 반색했다.

“출·퇴근길에 보면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임신 초기에는 노약자석에 가서 앉아있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해서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배가 나와 누가 봐도 임산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기에도 지하철에서 적극적으로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눈치를 보거나 외면한다. 그나마 양보해주는 분들은 연세가 좀 있으신 아주머니들뿐이다.”

임산부 D씨(20대) 역시 “임산부 배려석의 디자인이 바뀌면 사람들이 임산부를 위해 배려석을 비워놓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C씨는 바뀐 임산부 배려석으로 걱정되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노약자석에는 원래 임산부도 앉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몇 몇 어르신 분들은 노약자석에 임산부가 앉아있으면 눈치를 주시기도 하고, ‘젊은 사람이 서서가야지’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임산부 배려석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니 이제 임산부는 그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호통이 돌아올까 봐 노약자석 근처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스티커가 붙여진 임산부 배려석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에서 배포하는 ‘임산부 엠블럼’도 있다. 임산부 엠블럼은 임신 초기, 외모로 쉽게 구분할 수 없어 배려 받지 못하는 임산부들을 위해 만든 열쇠고리나 카드지갑 형태의 ‘표식’이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B씨는 “매일 출·퇴근 할 때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임산부 엠블럼이라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 것이 실제로 있느냐”고 반문했다.

B씨에게 임산부 엠블럼에 대해 설명하자 B씨는 “정말 그런 것이 있는 줄 몰랐다.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할 것 같다”며 “사실 의자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일종의 강요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나. 임산부 엠블럼이 자발적으로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plkplk123@kukinews.com
이다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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