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단비 기자] 한국 언론이 우스운 외국 과학자들

[기자수첩/김단비 기자] 한국 언론이 우스운 외국 과학자들

기사승인 2015-11-05 02:15:55

지난 2일 전염성 질병을 연구하는 비영리 연구소가 ‘메르스/에볼라 대응 전략’을 발표한다며 국내 과학/의학 담당 기자들을 한 데 불러 모았다. 연구소는 국내 유행한 메르스 바이러스에서 43개의 아미노산 변이를 발견했다며 백신을 이용한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개발 중인 저분자 치료물질을 소개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이야기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피해 확산에 책임을 지고 백신 개발에 400억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백신만으로 대응이 어렵다는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주장은 백신 개발을 위해 400억원을 투자한 삼성도, 투자를 받아 부단히 연구 중인 국제백신연구소도 받아드리기 힘든 이야기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소속 과학자들은 2일 간담회에서 국내 메르스 바이러스에서 43개 아미노산 변이를 확인했다는 것을 보도자료 제목으로 내걸었다. 기자들이 모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자 현장에서는 사우디발 메르스 바이러스와 동일하다는 정부의 발표내용이 틀렸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연구소는 3년 전 사우디에서 첫 발병한 메르스 바이러스와 비교분석 한 것이지, 현재 사우디에서 유행 중인 메르스와는 동일하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당초 이들이 내건 ‘국내 메르스 바이러스 변이 확인’이라는 제목만 본다면 ‘돌연변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발표내용을 뒤엎는 내용인 걸로 추측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니 메르스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자연적 변이가 일어나기 쉽다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이 연구 중인 치료물질을 설명했다.

또한 43개 아미노산 변이가 의미하는 바도 크지 않다. 정부가 메르스 사태 당시 ‘돌연변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은 것도 변이가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이된 정도가 치사율과 전파 양상에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과학자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도 5~10% 자연적 변이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를 두고 돌연변이 HIV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메르스 바이러스 아미노산 43개 변이는 바이러스 복제나 전파 기능 면에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변이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과학자는 “과학을 잘 모르는 언론을 이용해 마치 그럴싸한 내용이 있는 것처럼 포장했다”며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장에 나온 과학자들의 태도도 문제였다. 기자들의 질문에 “오해는 말라, 바이러스의 특성을 말한 것뿐”이라며 구체적 설명보단 회피에 가까운 단답형으로 답했고, 회사 소개로 이어졌다. 추가 질문은 홍보담당자에게 연락해달라며 간담회장을 금방 떠났다.


메르스로 큰 피해를 본 한국은 ‘메르스’란 세 글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메르스 대응에 실패했고, 초기 대응 때 병원명을 밝혀지지 않도록 종용한 의료계 또한 반성할 점이 크다. 그렇기에 메르스 사태가 일단락되어 대응 전략을 모색할 이 시점에 우리 모두 신중하다.

간담회를 급하게 연 까닭을 묻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방한한 시점에 맞혔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변이와 변이주를 구분한 줄 모르는 언론을 상대로 잔꾀를 벌여 간담회를 연 연구소는 이번 간담회 논란과 관련해 억울해하기보다 왜 신뢰를 주지 못했는지 곰곰이 되돌아 봤으면 한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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