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세요] “朴대통령 속 좁아, 조화 보냈어야”… 유승민 부친상으로 본 ‘조문의 정치학’

[어떻게 생각하세요] “朴대통령 속 좁아, 조화 보냈어야”… 유승민 부친상으로 본 ‘조문의 정치학’

기사승인 2015-11-10 14:51:55

[쿠키뉴스=조현우 기자] 어쩌면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아버지를 떠나보낸 마지막까지도 스스로를 불효자라고 자책했을지 모릅니다. 부친 유수호 전 의원 빈소에서 오히려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 많이 회자됐으니 말이죠. ‘조문 정치학’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진 빈소를 돌아봅니다.

우선 숫자를 좀 세어보겠습니다. 유 의원 측에서 집계한 조문객은 여야 현역 의원만 112명입니다. 이들을 포함해 정치인, 전·현직 관료, 법조인 등의 이름이 적힌 방명록은 7권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방명록에 청와대 참모들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일각에서 ‘나비효과’로 평가받고 있는 조화 문제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유 의원 측은 조화와 조의금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양승태 대법원장, 황교안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황우여 교육부 장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 수백여명이 조화를 보냈습니다. 유 의원 측도 사양한다고는 했지만 보내온 조화는 모두 받았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명의 조화는 없었습니다. 청와대 설명은 심플합니다. 상주 측에서 사양한다고 해서 그 뜻을 존중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과 김현숙 고용복지수석은 조화를 보냈습니다. 뭔가 조화롭지 않은 모습입니다. 참고로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부친상, 8월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모친상에는 조화를 보냈습니다.

과거를 살펴보니 박 대통령이 유 의원의 슬픔을 챙긴 적도 있었습니다. 2012년 9월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유 의원 장모상을 직접 찾았습니다. 묘하게 이때도 조화는 없었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이라 공직선거법상 조화 등 어떠한 기부행위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유 의원을 위로하며 직접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제안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지 않는 것을 두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하도 뒷말이 무성해 여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여론조사는 없었고 노컷뉴스가 기사를 통해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약 1200명이 투표한 가운데 ‘속좁은 정치이다. 당연히 보냈어야 한다’(83.6%)가 ‘안 받겠다고 하니 보낼 필요가 없었다’(16.4%) 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박 대통령의 조화가 1차적인 관심사였다면 2차 관심사는 새누리당의 ‘TK(대구·경북) 물갈이’로 모아졌습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은 빈소에서 취재진을 만나 “공천에서 공정성만큼 중요한 것은 참신성”이라며 “지난번 총선 때도 대구·경북에서 60%가량 물갈이를 해 전체 의석이 과반을 넘을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도 “대구 지역 시민들이 똑똑하다. 내가 초선일 때 대구 의원들이 7명 물갈이 됐다”며 “대구시민들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 의원은 대구 동구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주목할 점은 유승민 찍어내기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TK 물갈이를 전제로 할 경우 원내대표 유승민 찍어내기는 1라운드였을 뿐, 다음 라운드인 대구 의원 유승민 솎아내기가 남아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박 대통령이 빈소에 조화를 보내지 않은 건 ‘옹졸한 처사’가 아니라 ‘교묘한 책략’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다시 한 번 ‘유승민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날린 것”이라며 “윤 의원의 빈소에서의 TK 물갈이 발언 역시 ‘눈치코치 없는 애드립’이 아니라 ‘각본에 다른 대사’다. ‘유승민은 안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에 증폭기를 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박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인 유 의원을 빈소에서 어루만지는 손길도 있었습니다. 유 의원에게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겨 정계에 입문시킨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박 대통령께서 유 의원을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질타하는 것을 TV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가슴이 아팠다”며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유 의원 같은 능력 있고 소신 있는 정치인을 내칠 게 아니라 보듬고,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유 의원이 어려운 일이 전혀 없다. 유 의원은 우리 새누리당의 아주 중요한 자산”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이쯤되니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대체 왜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이 불편한 관계가 됐는지 다시 한 번 알려달라는 게시물까지 나옵니다. 유 의원은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맡으며 친박 핵심으로 활동하다 2012년 4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다양한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등 ‘쓴소리 파문’으로 멀어졌습니다. 새누리당 당명 변경에도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박 대통령 당선 뒤에는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 인선에 대해 여권 인사로는 유일하게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유 의원은 지난해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외교 라인을 향해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비판했고, 같은해 말 정국을 뒤흔든 정윤회 문건 유출의 배후로 김무성 대표와 함께 'K·Y'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원내대표를 맡은 올해에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인 유 의원을 직접 겨냥해 “여당 원내 사령탑이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며 “배신의 정치”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에 유 의원은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라며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유 의원을 불편해하는지, 조화를 보내지 않은 숨은 이유가 있는지,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TK 물갈이를 할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0일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인상적입니다. 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은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 달라”며 “국민 여러분은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봐도 ‘총선 심판론’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입니다.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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