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판독시스템(VAR)은 축구사에 유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한참 잘못 사용되고 있다.
20일 저녁(한국시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포르투갈과 모로코의 러시아월드컵 조별예선 B조 2차전. 전반 4분 호날두가 그림 같은 헤딩 골로 앞서갔지만 이후 모로코가 파상공세로 반격하며 경기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모로코는 짜임새 있는 공격으로 포르투갈을 흔들었고, 언제든 득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멋진 공방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했다. 후반 35분경 포르투갈 수비수 페페가 볼을 처리하다가 손에 맞았지만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은 것. 곧장 모로코 선수들이 항의했지만 주심은 번복하지 않았고 VAR도 가동하지 않았다.
이후 방송은 리플레이 영상을 경기 내내 재생하며 해당 상황에서 명백한 핸들링 파울이 있었음을 알렸다. VAR이 가동되면 틀림없이 페널티킥이 선언될만한 파울이었다. 그러나 끝내 상황은 재구성되지 않았고, 모로코는 한 점차 패배를 당했다. 앞서 이란전에서도 0-1로 패한 모로코는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탈락이 확정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VAR을 도입하면서 내세운 논리의 중심에는 ‘공정성’이 있다. 치명적인 오심을 막아 최대한 공정한 그라운드 환경을 만들겠다는 거다. VAR이 경기의 흐름을 끊고 역동성을 저해한다는 반박이 있었지만 FIFA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꾸준히 피력했다. “시범운영 결과가 매우 만족스럽다”고 공언한 FIFA는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VAR이 도입됐다.
VAR은 틀림없이 유용한 도구다. 도입 이전까지는 전적으로 3명의 그라운드 위 심판의 눈에 의존해 판정이 이뤄졌기 때문에 오심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이 대표적인 사례다.
FIFA의 확신과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 VAR은 더 큰 불공정을 유발하고 있다. VAR은 득점 상황, 페널티킥 선언, 레드카드 퇴장, 다른 선수에게 잘못 준 카드 등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4가지 상황에서 가동될 수 있다. 경기당 VAR 전담심판은 4명이 투입된다. 비디오판독 결정은 전적으로 주심에게 있지만 VAR 심판진은 주심에게 비디오판독을 권고할 수 있다. 선수나 감독의 판독 요청은 불가능하다. 무리하게 요구하다가는 오히려 경고 등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포르투갈-모로코전에서 페페의 핸들링은 명백했다. 그러나 주심은 경기를 속개했다. 리플레이 영상을 통해 파울을 잡아낼 수 있었지만 VAR 심판진에 의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오심이 경기를 지배했고, 모로코의 월드컵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이 같은 ‘VAR 오심’은 한국 입장에서 더욱 불편하게 다가온다. 한국은 지난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VAR 판독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해 실점을 내주고 0-1로 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당시 아길라르 주심은 이어폰을 통해 VAR 심판진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VAR 심판진이 페널티킥 상황이라는 보고를 전했고, 아길라르는 한참 뒤에야 비디오 판독을 선언했다. 반면 경기 막판 스웨덴 선수의 손에 볼이 맞은 것은 판독이 진행되지 않았다.
조별리그 20경기가 진행된 현재 총 10차례 페널티킥이 나왔다. 이 중 4개는 비디오 판독을 통해 정정된 결과다. 이대로라면 월드컵 역대 최다 페널티킥 기록(18개)이 가볍게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선 더 한 파울이 있었지만 VAR이 잡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VAR 불평등’은 아직 조별예선이 진행 중일 뿐이지만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잉글랜드 공격수 해리 케인은 튀니지전에서 부상 위험이 다분한 태클을 당했지만 비디오 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 브라질은 스위스와의 1차전에서 1-1로 비긴 뒤 ‘선별적 VAR’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대로라면 VAR은 이번 월드컵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선수·감독이 ‘첼린지’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는 지적도 적잖게 나온다. 오심을 모조리 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조롱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결선 토너먼트 전에는 특단의 조치를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