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 30세 미만’의 세대분리 가능 연령 기준을 둔 의도가 확인됐다. 부유한 부모의 수급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실제 부정수급 방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데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명확한 근거 없이 세워진 기준에 가로막혀 복지 지원이 필요한 청년들이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12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세대분리 가능 연령인 '만 30세' 기준이 부유한 부모의 자녀를 수급 보장에서 거르기 위한 장치라는 점이 드러났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본지에 “부모의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대상자(20대 청년)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 이들까지 모두 보장을 해버리면 부잣집 아들 등(도 수급을 받을 수 있어) 사회적 수용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복지 제도에선 세대분리 연령 기준이 없지만, 근로 가능 여부를 판단해 수급 대상을 선정한다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국처럼 연령 기준을 둬서 재정적으로, 부잣집 아들을 걸러내야 하는 기준 자체를 둘 필요가 없다”고도 말했다.
복지부 답변에 따르면 '부잣집 자녀' 때문에 부모 지원을 받지 않는 청년들까지 정책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모와 주거를 달리해도 ‘미혼 자녀 중 30세 미만인 사람’은 부모와 동일가구로 본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부모 부양을 실제로 받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20대 청년들은 생계급여를 비롯한 LH 임대주택, 국민취업지원제도, 청년전세대출 등 각종 청년 복지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다.
‘부자 악용’ 막으려 둔 연령 기준에…“무책임한 행정편의주의적 태도”
전문가들은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 연령 기준을 세운 것은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이다. 하지만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한 연령 기준 때문에 위기 상황에 놓여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이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잣집 아들을 걸러내는 게 아닌 급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것이 제대로 된 목적”이라며 “법에 대한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김지선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성북주거복지센터 활동가는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최소한의 생계 지원조차 제한하는 건 무책임하고 행정편의주의적”이라고 질타했다.
30세 미만 연령 기준이 부정수급 방지 목적이 아닌, 복지 예산 감축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됐다. 기초생활수급 선정 기준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에 따르면, 중생보위에서도 연령 완화에 대한 논의가 나왔지만 번번이 재정당국 반대에 막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이한솔 전 청년정책조정위원은 “연령 기준으로 부잣집 자녀를 거를 수 있겠나. 그저 정부가 돈 쓰기 싫으니, 연령 제한을 둔 것 같다”고 짚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현재 30세 미만 기준은 법적인 일관성 없이, 20대 청년들을 부정수급 받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셈”이라고 했다.
부정수급을 방지하려다 지원이 꼭 필요한 청년들에게 복지 지원이 돌아가지 않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청년 부채 문제를 지원하는 최유리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 이사장은 “세대분리법 때문에 복지 정책 대상에서 제외돼 빚더미에 앉은 청년들도 많다”며 “부정수급 우려 때문에 법을 고치지 않는 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 19명에 개정 방향 물었더니…6명 “19세로 완화” 5명 “연령 폐지”
대다수 전문가들은 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국회, 학계, 법조 등 전문가 19인을 대상으로 법 개정 방향을 묻자, 6명은 “민법상 19세 기준과 일치시키는 게 맞다”고 답했다. 5명은 “연령 기준 자체를 폐지하고, 부정수급을 방지할 다른 제도적 보완책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일부는 20대 탈가정 청년 등이 수급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 단절 증명’ 특례조항을 보다 명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대분리 연령 기준은 시행령이기 때문에, 행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바꿀 수 있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법과 달리 시행령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심의한 뒤 공포하는 방식으로 제·개정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대분리 연령 기준은 시행령이기 때문에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손질할 수 있다”며 “분리 연령을 현실에 맞게 낮춰 청년의 독립을 돕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20대 청년을 무늬만 성인이 아닌, 독립적인 주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 청년들이 자립 시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납세자가 되도록 돕는 게 국가에도 이득”이라며 “청년의 독립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복지 정책의 틀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김세현 광진구 청년센터 선임매니저는 “지금의 제도는 20대 청년들에게 캥거루족을 권장하는 셈”이라며 “법적으로 성인의 나이가 됐고, 부모와 따로 나와서 살면 독립된 세대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나. 성인으로서의 자립심을 기르는 데도 세대분리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집을 떠난 20대의 자립은 쉽지 않다. 대한민국에선 더 힘들다. 부모의 가정폭력, 일방적 지원 중단, 가출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난 청년들에게 국가는 법적 자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취업·결혼을 하지 않은 20대 청년을 독립 가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 기준은 일부 청년들을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어냈다. 쿠키뉴스 취재팀은 8월21일부터 10월31일까지 2개월간 30세 미만의 ‘독립 제약 청년’들을 직접 만났다. 빈곤 상태여도 기초생활보장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다. 큰 빚을 지거나, 노숙을 택한 청년도 있다. 세대분리법으로 복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 20대 청년의 삶을 조명하는 최초의 시도다. 11월4일부터 9편에 걸쳐 보도한다. *‘독립 제약 청년’이라는 언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