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의 정희는 아빠도 잘 아는 동네 아저씨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가해자를 밝혀내려 하지 않았으며, 아버지마저 정희가 당한 일이 사회적으로 제재받아야 할 범죄행위임을 입증하려 하지 않는다. 정희가 당한 아동 성폭력은 그냥 재수없었던 일 정도로, 피해자만 손해라며 동네의 비밀로 부쳐진다. 정희는 그 날의 진실을 다 토해낼 수 있는 명민함을 가진 아이였지만 이 사회는 정희에게서 말할 자리와 시간마저 빼앗았다.
"다 널 위해서이니 너의 입단속만 잘 하면 이 모든 것이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될 것이다." 이런 말들은 남성폭력을 당한 이들에게 체념을 아로새기길 강권함으로써, 그 어떠한 폭로도, 반격의 제스처도 다 거둬가버린다.
소외된 존재를 향한 예리한 시선을 가진 작가 신중선의 소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은 '정희의 시간'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노래방 여자' '반칙왕' '아내의 방' '묘화는 행복할까' '괜찮아' 까지 일곱 편의 소설들로 이뤄져 있다. 우리 시대에 '여자라서 행복하느냐'고 묻는 일곱 편의 소설들은 가족극장 속 여자와 남자가 엄마와 아버지, 자식이라는 위계적 역할 속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가를 치밀하게 추적해낸다. 페미니즘이라는 도구로 가족 판타지를 망치질하는 신중선 작가는 우리에게 손쉬운 해피엔딩 대신 무거운 질문다발을 안기며, 이 사회의 근간을 다시 짜내길 요청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