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특집①] 산이의 모순

[산이 특집①] 산이의 모순

[산이 특집①] 산이의 모순

기사승인 2018-11-24 08:00:00

래퍼 산이가 한국 힙합에 한 획을 그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에서다. 산이는 지난 16일 신곡 ‘페미니스트’를 기습발매한 뒤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노래에 나열된 여성 혐오적 논리 때문이다. 골수팬마저 등을 돌리자 산이는 “곡에 등장하는 화자는 내가 아니”라면서 ‘페미니스트’는 이성 혐오를 비판하기 위한 노래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가사 한 줄 한 줄 해석까지 덧붙였다.

‘페미니스트’는 제 의도와는 정 반대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이미 실패한 작품이다. 곡의 화자와 실제의 자신을 분리시킬 만한 장치나 은유를 제대로 심어놓지 못했다는 건, 창작자로서 산이의 한계를 보여준다. 나아가 산이가 내놓은 해명의 진정성도 의심받는다. 이미 산이가 ‘병신X’ 등의 노래로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적 있다는 점, ‘페미니스트’를 내기 앞서 이수역 폭행 사건과 관련해 여성들에게 불리한 영상을 SNS에 올렸다는 점, 제리케이에 대한 맞디스곡 ‘6.9’에서 ‘어제 올린 곡 덕분에 젝시믹스 행사 취소’라는 가사로 ‘페미니스트’ 속 화자와 실제의 산이를 동일시했다는 점 등의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산이가 올린 해석본에서조차 성차별과 여성인권에 대한 그의 몰이해가 드러난다. 그의 설득이 힘을 잃은 이유다.

산이는 ‘페미니스트’가 “여성을 혐오하는 곡이 아닙니다”라고 설명했지만, 곡에 등장하는 여성 혐오 논리를 깨부수지는 못한다. 가령 그는 노래에서 실재하는 성차별을 부정하며 그 근거로 남성에게 지워지는 병역 의무, 데이트 비용, 집값 부담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해석본에서도 산이는 자신이 나열한 근거들이 왜 성차별을 부정하는 이유가 될 수 없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화자와 자신과의 거리두기에 급급할 뿐이다. 군대, 데이트 비용, 집값 문제에 선행한 성 역할 강요와 경제적 성차별에 산이는 무감하다. 성형수술과 탈코르셋에 대한 구절도 그렇다. 산이는 화자의 모순된 태도를 얘기할 뿐, 여성을 향한 외모 평가와 그로 인해 강요되는 꾸밈 노동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산이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차별적이다.

산이의 모순은 또 있다. 과격함 없이는 바뀌지 않는 세상은 외면한 채, 여성의 과격함만을 문제 삼는 모순이다. 산이는 해명글을 올리면서 이성적인 남녀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그래서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일베와 같은 ‘성 혐오 집단’이라고 덧붙였다.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발언이다. 과격한 미러링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성차별적 구조를 외면한 채 존중과 사랑을 외치는 건 허황될 뿐만 아니라, 실재하는 불평등 구조를 공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쁘다.

‘페미니스트’는 산이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여성들에게 지탄 받은 건 당연지사고, 노래의 화자를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가사에 공감한다’던 남성들의 지지도 잃었다. 성별 대립 구도는 오히려 더 첨예해졌다. 무딘 젠더 감수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어설픈 참견의 콜라보레이션이 빚은 촌극이다. 여러모로 한국 힙합에 한 획을 그은 노래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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