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딸로 파격적이고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서양화가 허보리(38)가 전주에 새로운 시도를 담아낸 작품들을 풀어 놓는다.
전주 한옥마을 위치한 ‘백희’ 갤러리에서 30일부터 2월 26일까지 4주간 열리는 허보리 개인전 ‘광화문 사냥꾼’이다.
과거 ‘무장가장’시리즈에서 작가는 승자독식,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 속에서 가족 부양을 위해 일하는 가장들의 모습을 힘없는 무기로 표현한 바 있다. 이전 작업들이 ‘무장가장-사냥꾼‘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전시는 사냥꾼이 획득한 ’전리품‘에 주목했다.
이 시대의 가장들은 진짜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매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전쟁터에서보다 더 치열하게 싸워 전리품인 ‘월급’을 얻는다. 작가는 현대사회의 전리품을 기념비로 만들어 사냥꾼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며 경의를 표한다.
이번 전시 ‘광화문 사냥꾼’에서 선보이는 10점의 작품은 고기의 부위별 마블링을 수놓은 위풍당당한 고기추상이다.
언젠가는 굉장히 훌륭했던 무기였던 광화문 사냥꾼들의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뜯고 자르고 이어붙인 바탕 위에 반복적인 바느질이란 노동집약적 행위를 통해 전리품을 기념비로 만들었다.
면사 여섯가닥이 꼬여있는 자수실을 한 가닥씩 뽑아 마치 소묘를 하듯 수놓은 채끝살, 살치살, 등심, 안심, 양지머리의 각기 다른 마블링은 와이셔츠와 넥타이 위의 추상화가 된다.
허보리작가는 가장 아름다운 패턴을 찾기 위해 그녀의 심미안으로 참 많은 고기들을 수 없이 들여다보고 가장 예쁜 마블링을 가진 고기를 발견했다.
넥타이와 셔츠를 고르고 해체하고 꿰매는 행위, 전리품의 아름다운 패턴을 수실로 한땀한땀 수놓는 수없이 반복적인 행위와 시간이 모여 화려한 작품이 완성된다.
그녀는 바느질과 전통 자수를 작업의 방식으로 택함으로써 매일의 반복적 노동을 적층시킨다. 얇은 수실이 반복적으로 수놓아져 만들어지는 고기의 마블링은 현대인들의 매일의 노동이자 수고로운 시간의 기록인 것만 같다.
입체적이면서도 다분히 회화적인 허보리의 고기추상은 발탁 받은 임금노동자-광화문 사냥꾼들의 수고에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남녀 간의 전통적 역할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대사회에서조차 여전히 전통적인 여성성을 강요받는 여성들의 그림자 노동을 동시에 조명한다.
신성용 기자 ssy147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