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문제는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를 방치한 결과다. 지난 2월 가천대길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하던 고 신형록 전공의가 목숨을 잃었다. 전공의의 열악한 업무환경, 고된 노동 강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오르게 하는 사건이었지만 거기서 그쳤다.
지난 1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발표한 ‘전공의 업무 강도 및 휴게 시간 보장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면 바뀐 게 없다. 근로자의 주당 최대 근무시간은 지난해 7월 개정돼 52시간이지만 전공의는 ‘전공의법’에 따라 주당 최대 88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전공의 대다수가 여기에 근무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응답자들의 91.6%가 하루 평균 1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41.1%가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한다고 밝혔다. 과반에 가까운 사람이 주당 10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
휴게 시간도, 휴가도 제때 보장받지 못한다. 조사에 따르면 ‘2주간 점심 식사를 해 본 적 없다’, ‘5일에 2번 정도 식사를 할 수 있다’ 등의 답변도 있었다. 법이 유명무실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가 하면 최근 조선대 치과병원에서는 전공의에 대한 성추행 의혹도 발생했다. 학회 후 술자리에서 교수가 여성 전공의의 신체를 만지고 쓰다듬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과는 물론 피해자-가해자간 격리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전공의는 노동조합의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노조 가입 조건에 ‘의사’를 제외하진 않았지만 노조 설립 당시부터 가입한 의사가 없었다고 한다. 전공의도 병원 노동자이지만, 어느 곳으로부터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전공의를 대표하는 단체는 전공의협의회밖에 없다”며 “실제로 일하는 병원에게 수련환경 개선 등에 대해서 요청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질적인 교섭은 할 수 없다”며 역할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만 근무하는 특수한 직책이라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며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006년 전공의 노조가 설립된 바 있지만, 선언의 느낌이었을 뿐 실제 운영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현재 전공의협의회에서 수련병원별로 노조를 구성하는 중이다”고 밝혔다.
근무와 수련을 병행하는 전공의들에게 ‘전공의법’만으로는 수련 및 근무 환경 개선을 기대하기란 무리가 따른다. 전공의가 사망했지만, 바뀐 것은 없다. 개선이 없다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현재로선 전공의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갖게 될 날이 빨리 오길 그저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