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크라이슬러의 회생을 주도하고, 포드 머스탱을 개발한 리 아이어코카가(리도 앤서니 아이어코카)가 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아이어코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졌다고 미국 CN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올해 94세인 아이어코카는 파킨슨병으로 인한 합병증이 사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그의 딸이 전했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1924년 태어난 아이어코카는 자동차 대여업자이던 부친의 영향으로 자동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성장했다. 그는 미국 자동차 업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자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는 미국 3대 자동차업체 중 2곳의 경영을 책임진 인물로 기록됐다.
아이어코카는 1946년 포드에 기능공으로 입사해 자동차 업계와 인연을 맺은 뒤 판매사원으로 직책을 바꿔 두각을 보였다.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36세이던 1960년 포드 부회장이자 총지배인이 됐다.
이후 스포츠카 머스탱을 출시했으며 46세이던 1970년 포드 회장 자리에 올랐다. 포드 머스탱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주목을 받는 미국 명품 자동차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1978년 포드 창업자의 손자인 헨리 포드 2세와의 의견 충돌로 해고되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포드에서 해고된 후 몇 달 뒤에 파산 위기에 놓인 크라이슬러 회장을 맡았다. 아이어코카는 크라이슬러가 국가 경제에 중요해 파산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1979년 정부가 보증하는 12억 달러 대출을 얻어냈다.
회생을 위해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전 부문에서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을 단행했으며 자신도 첫해에 임금을 1달러만 받았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케이카, 미니밴 등을 히트시키며 크라이슬러를 재정난에서 구해냈다. 크라이슬러의 경영상태는 1980년 17억 달러 적자에서 1984년 24억 달러 흑자로 바뀔 만큼 호전됐다. 회생을 위한 대출도 계획보다 7년이나 이른 4년 만에 모두 상환했다.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킨 아이어코카의 업적은 산업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반전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미국인들은 아이어코카를 한 시대를 규정한 경영인을 넘어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대단한 지도자로 평가하기도 해다. 실제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갤럽 설문조사에 의하면 1980년대 중반에 아이어코카를 앞서는 사람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밖에 없었다.
송병기 기자 songb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