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엄태구가 있었다. 지난 3일 서울 봉은사로 프레인 TPC 사옥에서 만난 배우 엄태구는 OCN ‘구해줘2’의 김민철이 아니었다. 영화 ‘밀정’의 하시모토도, 영화 ‘안시성’의 파소도 아니었다. 순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고르는 ‘배우 엄태구’는 수많은 작품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신기했다.
지난달 27일 종영한 ‘구해줘2’는 엄태구가 2015년 방송된 JTBC ‘하녀들’ 이후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다. 그것도 가장 비중이 크고 분량도 많은 주연 김민철 역할이다. 그래서인지 엄태구가 작품에 임하는 자세는 이전과 조금 달라 보였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미친 꼴통’이라는 캐릭터 설명처럼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줬다. 엄태구는 환하게 웃으며 현장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어줬다고 겸손하게 설명했다.
“저도 직업이다 보니까 먹고 살려고 한 거예요. (웃음) 농담이고 저도 준비를 많이 하지만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현장의 사람들과 상대 배우죠. 그리고 의상도 중요했어요. 파란 트레이닝복과 빡빡 민 머리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면서 맞춰 보니까 그런 연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재밌었어요.”
이날 엄태구가 가장 길고 자세하게 말한 건 선배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함께 호흡하는 배우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잠깐 함께했던 배우 천호진과의 만남이 떨렸다고 털어놨다.
“연기할 때 상대 배우들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주변에 스태프가 많아도 오직 그 분만 보이는 순간이죠. 그래서 상대 배우 분들 덕분에 더 살아있는 연기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천호진 선배님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크게 느껴졌어요. 작품을 시작하면서 선배님과 어떻게 대립하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걱정했을 정도니까요. 가장 떨리는 순간도 처음 선배님을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많이 배려해주시고 자유롭게 연기하라고 해주셨요. 전 천호진 선배님의 연기가 정말 신기하고 좋았어요. 같이 연기할 때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막상 모니터를 보면 선배님 덕분에 살아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시즌2로 이어진 ‘구해줘’ 시리즈는 사이비 종교를 주제로 하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태구는 기독교를 믿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인지 사이비 종교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제가 가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사이비 종교가 사기를 위한 도구인지 그 자체가 사이비인지 약간 헷갈려요. 어떤 것이 사이비라고 말하기엔 교회를 다니는 제 입장에서 조심스러워요. 다만 사랑하고 겸손한 게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평소에도 저한테는 그게 정말 큰 부분이죠. 사이비 종교가 저한테 찾아와도 쉽게 당하진 않을 거 같아요. 하지만 귀가 얇은 면도 있어서 막상 제가 제일 먼저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엄태구는 ‘구해줘2’를 “감사한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많은 선배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배웠고, 이렇게 긴 기간 쉬지 않고 촬영한 것도 처음이었다.
“‘구해줘2’는 여러 의미로 감사한 작품이라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일단 안 해봤던 걸 안 거잖아요. 현장에서 많은 배우들, 선배님들을 보면서 배운 것도 있고, 드라마를 이렇게 4개월 동안 쉬지 않고 촬영한 것도 처음이에요. 지금 당장 어떤 걸 배웠다고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하지만 제 몸이 배운 게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다음 작품을 해보면 ‘구해줘2’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제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부모님이 TV로 보면서 좋아하셨다는 의미도 커요. 그게 참, 되게 컸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프레인TP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