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던 리치: 소멸의 땅’ 돌연변이 세계에 온 걸 환영합니다 [넷플릭스 도장깨기⑫]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돌연변이 세계에 온 걸 환영합니다 [넷플릭스 도장깨기⑫]

기사승인 2019-10-20 14:33:51

제목이 문제였다. 넷플릭스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감독 알렉스 가랜드)은 몇 개월 동안 ‘내가 찜한 콘텐츠’ 목록에 들어 있었지만, 손이 가지 않는 작품이었다. ‘서던 리치’가 무엇인지 모르고, ‘소멸의 땅’도 와 닿지 않았다. 뭔가 소멸하는 땅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바보들의 이야기를 왜 봐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반대로 제목을 제외하면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SF 장르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2015년 영화 ‘엑스 마키나’의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후속작, 배우 나탈리 포트만에 대한 신뢰, 영화에 대한 연이은 호평까지. 고집을 꺾고 내 발로, 아니 내 손으로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 들어갔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는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취조 받는 생물학자 레나(나탈리 포트먼)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2~3주의 식량만으로 ‘X구역’에서 4개월이나 지냈고 다섯 명의 탐험대 중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레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 역시 자신이 왜 기억이 없는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잘 모르는 눈치다.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그녀가 남편을 따라 X구역 앞에 놓인 ‘서던 리치’ 부대에 합류하고 탐험대에 지원하는 이야기를 차례로 설명한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터치하고 감상을 시작한 다음엔 진입장벽이 없었다. 현재에서 시작해 특정 시점의 과거부터 전개되고, 다시 과거와 그 이전 과거를 오가는 전개 방식이나 SF와 어드벤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점, 이해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관과 설정 등 어떻게 보면 낯설고 복잡한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복잡한 설정을 던져둔 채 방치하지 않고 하나의 길로 정리해나간다. 직접 해석해서 하나하나 풀어내야 할 필요 없이 영화를 믿고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친절과 불친절의 균형을 잘 맞췄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는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외계인과 관련된 미스터리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주인공 레나의 드라마, 변종 괴물과 벌이는 액션, 그로테스크하고 화려한 영상 등 흥미로운 요소들이 번갈아 등장한다. 이 같은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다양성은 감상을 중단할 여유를 주지 않는 건 물론, 해석의 폭을 넓힌다. 자신이 보고 싶은 장르와 주제로 영화를 소비할 수 있다. 영화는 마지막 결말까지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으며 관객의 주체적인 독해를 돕는다.

가장 좋았던 건 ‘쉬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X구역에 대해 알아가는 순간이다. 통신도 되지 않고 기억을 잃어가는 그곳의 규칙을 배워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변형된 동식물의 모습을 CG를 이용해 눈앞에 살아 있는 것처럼 구현하는 장면들이 압권이다. 극 중 인물들과 함께 새로운 공간을 체험하는 느낌과 함께 제작진의 상상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지구 밖의 새로운 공간을 탐험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전멸, 절멸, 소멸’을 뜻하는 영화의 원제(Annihilation)와 끊임없이 분열하는 암세포의 이미지가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있다. 하지만 주제나 표현의 예술성, 완성도보다 영화 속 세계를 체험하게 하고 다양한 해석 여지를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지금의 트렌드를 잘 반영했다. 화려한 영상을 큰 스크린에서 만나지 못했다는 건 아쉽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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