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신의 한수-귀수편’ 여자들은 또 희생당하고

[쿡리뷰] ‘신의 한수-귀수편’ 여자들은 또 희생당하고

‘신의 한수-귀수편’ 여자들은 또 희생당하고

기사승인 2019-11-02 08:00:00

영화 ‘신의 한수 - 귀수편’(리건 감독)은 남성 중심 영화의 안일함과 해로움을 되풀이 하는 영화다. 복수라는 미명으로 폭력을 낭만화하고, 잔인한 살육과 피 튀기는 액션으로 부족한 개연성을 때우려 한다. 가장 나쁜 건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다.

‘신의 한수’는 2014년 개봉한 영화 ‘신의 한수’의 스핀오프 버전이다. 전작에서 태석(정우성 분)과 벽을 사이에 두고 바둑을 둔 귀수의 전사를 그린다. 누나와 스승 허일도(김성균)을 잃은 귀수(권상우)가 악당들에게 복수하는 여정을 그린다. 

2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이 작품에서 그나마 의미 있는 분량을 가진 여성 캐릭터는 고작 3명이다. 그 중 한 명은 아동 성폭력의 피해자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다른 한 명은 악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납치와 인질극의 희생양이 된다. 나머지 한 명은 남성 조연의 연애대상을 뿐,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 여성은 또한 유사 어머니, ‘금수저’ 엘리트, 도박장의 팜므파탈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답습해 고루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분량이 30초가량밖에 되지 않는 여성 단역마저 빚 때문에 인신매매의 위기에 처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아무리 추악하고 반사회적인 것일지라도 욕망은 오직 남성 캐릭터들만의 것이 된다. 사제나 동료 간의 끈끈함도 남성들이 전유하는 감정이요,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복수를 위해 와신상담하는 것도, 비장한 각오로 복수를 하거나 복수 당하는 것도 모두 남성들의 몫이다. 여성 캐릭터들은 악역의 잔혹함을 강조하거나 남성 주인공을 각성시키기 위해 희생당한다. 지난 몇 년 간 비판 받았던, ‘여성 캐릭터의 도구적 활용’이라는 남성 중심 영화의 맹점 또 한 번 드러난다. 

남성 캐릭터들도 전형적이긴 마찬가지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복수를 이뤄내는 주인공 귀수(권상우) 그의 곁을 지키는 웃음 담당 감초 조연 똥선생(김희원), 잔인하기 짝이 없는 악당 부산잡초(허성태)와 황사범(정인겸) 등 대부분의 캐릭터에게서 짙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나마 새로운 건 배우 우도환이 연기한 외톨이 역이다. 그는 냉엄한 내기 바둑의 세계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그가 두는 ‘살인 바둑’은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을 상징한다. 그런데 정작 작품은 외톨이를 귀수가 격파해야 할 대상으로 납작하게 누른다.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니 작품을 지배하는 비장한 공기는 몰입이 되기는커녕 민망하고 거북하다. 화려하고 원초적인 액션 신들이 눈길을 끌긴 하는데, 15세 관람가에 적절한 수준인지는 의문이다. 베테랑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는 칭찬할 만하다. 7일 개봉.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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