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비보와 분노하는 여성들

구하라 비보와 분노하는 여성들

기사승인 2019-11-25 15:23:52

그룹 카라 출신 가수 겸 배우 구하라가 세상을 떠난 24일, SNS에선 슬픔과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인이 생전 겪은 아픔이 여성 혐오적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한 데 모인 것이다.

25일 경찰에 따르면 구하라가 전날 자택에서 숨진 사건과 관련, 고인이 자필로 쓴 신변 비관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 감식과 유족 진술 등을 종합해 현재까지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부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고인의 사망 이후 SNS 실시간 트렌드엔 ‘고인의 명복’이나 ‘오보이길’ 외에도 ‘최종범 처벌’ ‘사회적 타살’ ‘판사 새끼’ 등이 올랐다. 성범죄 피해 여성들이 끝없는 고통에 시달린다는 점을 근거로 ‘사회적 연쇄살인’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15일 성추행 피해자가 쓴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구하라 사망 이후 참여자 수가 급속도로 늘어 25일 20만명을 돌파했다.

고인은 지난해 9월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에게 불법촬영물로 협박당했다며 최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최씨의 혐의 중 협박·강요·상해·재물손괴 등만 유죄로 인정하고,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촬영에 동의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최씨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5월 최씨는 SNS를 통해 새롭게 개업한 미용실을 홍보했다. 같은 달에 고인은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매니저에 의해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당시 나는 ‘구하라,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가 상상도 못 했던 댓글들을 마주하고 아연실색했다. 온갖 모욕과 성희롱이 ‘순공감순’ 댓글 상위권에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결과적으로 고인이 협박당한 사실은 인정됐지만,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재판부가 “영상 내용이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비공개로라도 동영상을 확인해야겠다고 말하는 동안, 온라인에선 ‘구하라 동영상’이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악성 댓글은 어디에서든 성화였고, 언론은 여느 때와 같이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여성 연예인들을 향한 가혹한 잣대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고인은 지난달 세상을 등진 가수 겸 배우 설리와 절친한 사이였다. 전형적인 여성 아이돌의 모습을 거부했던 설리가 대중에게 난도질당했듯, 구하라도 ‘여성 아이돌다움’을 강요당하며 끊임없이 수모를 겪었다. 멀게는 MBC ‘라디오스타’에서 공개 연애를 종용하던 MC들에게 맞섰다가 비난받은 일부터, 최근에는 안검하수로 눈 수술을 했다가 ‘성형 논란’에 휩싸일 일도 있었다. 

슬픔은 분노를 동반한다. 여성들은 포기가 아닌, 저항과 연대를 선택한다. 부산페미네트워크는 25일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최씨 사건을 판결한 오덕식 판사 등 사법부를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연다. SNS ‘여자 연예인 연검(연관검색어) 정화봇’은 ‘구하라’의 연관검색어를 정화하자면서 “고인에 대한 추측성 발언과 폭력적 키워드가 여러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구하라님을 애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검색어를 멘션으로 남겨달라”고 독려했다. 고인의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더는 누구도 잃지 않겠다는 결의와 분노, 연대는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오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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