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1년 살기를 시작하고 반년이 지나간다. 주위 사람들에게 제주도에 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말했었다. 제주도는 마음속에 두고 있는 10년 동안의 국내여행 계획 중 첫 번째 여행지다. 무엇을 얻고자 제주도 1년 여행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벌써 많이 얻었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지난 7월에 왔을 때는 숲길 5 km 걷기가 쉽지 않았다. 온통 울퉁불퉁한 바위 길을 집중해서 걷고 나면 피곤함과 함께 발목 통증 때문에 며칠은 걷기를 쉬어야 했다. 편안한 길을 조금 길게 걸으면, 이번엔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그 핑계로 또 며칠을 집에서 지냈다. 지금은 10km 쯤은 어렵지 않게 걷게 되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한 여름 연한 삼색의 에메랄드 바다색도, 겨울의 짙푸른 바다색도, 그 위에서 바람에 밀려오는 파도의 흰색도 아름답다.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구름, 아침과 저녁으로 집에서 바라보는 동쪽과 서쪽의 붉은 기운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검은 밭 가장자리에 칭칭 둘러선 밭담과 그 밭담을 붙들고 뻗는 송악과 담쟁이도 아름답다. 길가에 불쑥 나타나는 철늦은 들국화와 진저리 치듯 꽃잎을 떨구는 붉은 애기동백 그리고 편안한 초록이 철철 넘치는 당근 밭을 보며 행복을 실감한다.
퇴직휴가 기간을 포함해 1년이 넘도록 한시도 곁에서 떨어진 적이 거의 없이 생활했어도 아내와 내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살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10년을 여행하며 세상을 함께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이상 함께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늙어서는 그 때까지 보고 사진으로 남겨둔 장면들을 다시 들추며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젠 아이들 키우던 시절의 기억이 언제라도 새로운 나이가 되었다. 어느 여름날 아이들과 셋이 저녁을 먹는데 아들이 영어학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보니 영어학원에 버스시간이 가까웠더란다. 버스 놓칠까봐 한달음에 달려 집에 와서 학원 수업가방을 집어 들고 뛰어 버스 서는 곳에 가니 이미 학원버스 시간이 지나서 혹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오지 않더라고. 학원버스를 놓쳤다고 생각하고는 학원까지 부지런히 뛰어 갔다고 한다. 그 여름날... 그때 살던 집에서 영어 학원까지는 어른이 걸어도 30분은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게 갔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아빠?”
“학원 수업이 절반쯤 지났으니 선생님이 ‘왓즈업?’ 하지 않았을까?”
“아냐. 학원 쉬는 날이었어. 흐흐.”
“모르고 있었어?”
“그 전날 수업 끝나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놀다가 깜빡했지.”
“올 때도 걸어온 것 아니지?”
아들은 어렸을 적 집중력이 참 좋았었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면 모든 것 다 잊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밥 먹는 것도 마다하곤 했다. 때론 말을 해도 전혀 듣지를 못했다. 이것 때문에 사단이 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해서 저녁 준비를 끝냈는데도 아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가까운 놀이터엔 없었다. 다른 놀이터에도 없었다. 상가의 PC방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밖의 PC방에서도 찾지 못했다. ‘교통사고일까’ 하는 생각에 근처의 여러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했는데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곳은 문방구였다. 거기 앞에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동전을 넣고 게임하는 모습이 생각나서였다. 그날 아들은 거의 4 시간이나 게임을 했었다. 늘 가던 정문 옆 상가의 문방구가 아니라 후문에서. 그날은 내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었다.
아직은 굳이 땀 흘리며 꼭대기까지 오르는 관광객은 거의 없는 곳이 서우봉이다. 여름날 사람들은 그 아래 펼쳐진 함덕 해안의 고운 모래와 맑은 물을 즐기다 어두워지면 화려한 전등이 불을 밝히는 시원한 식당, 주점, 찻집에서 바다와 서우봉을 바라볼 뿐이다. 이른 아침과 해질녘에 이 봉우리를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든 주민들이다.
서우봉은 함덕과 북촌 사이에서 북쪽 바다로 불쑥 돌출된 해발 113 미터의 오름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과거엔 서모 또는 서모오름, 서모롬 등으로 불렸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서산(西山), 서산악(西山岳) 등의 이름을 얻었다. 조선시대에 서모오름의 북쪽 봉우리에 봉수를 설치하면서 이 봉수를 서산봉이라 했는데 조선 후기부터 서우봉(犀牛峰)이라고도 했다. 지금은 서우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나, 원래 이름은 아니다.
서우봉은 한 시간쯤 무리하지 않고 산책하기에 좋은 바다 경치와 숲을 갖추고 있다. 19번 올레가 함덕 해변을 지나 이 봉우리를 넘어간다. 또 함덕리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해안길, 둘레길, 정상에 이르는 산책로 등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개발 및 관리하고 있다.
조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서우봉 오르기를 시작하기 전 오른쪽에 허물어져 가는 가마가 눈에 들어온다. 기와를 굽던 와막밧이다. 길이 11m, 높이 166cm, 넓이 280cm의 이 가마는 기와를 지금은 불을 넣던 화구부분을 포함해 앞부분 약 2.4m가 훼손된 채 거의 방치되어 있다. 이 가마에 대한 안내문이라도 없었다면 아무도 여기가 기와를 구웠던 곳임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마터 뒤엔 집터를 닦고 있는지 축대를 튼튼하게 쌓아 평지를 만들고 있다. 함덕 해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다. 해안을 따라 난간이 있고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바다 가까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이다. 아직은 미완인 듯 멀리 가지 못하고 길이 끝난다. 이 길 끝에서는 서우봉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리며 굳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갖가지 모양의 바위를 살필 수 있으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서우봉으로 오르는 길은 잘 닦인 시멘트 포장도로다. 한발자국 오를 때마다 함덕 해변과 바다가 조금씩 넓어지며 눈에 들어온다. 관광객들 중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저녁때면 중턱의 정자까지 와서 함덕 해변과 저 멀리 지는 해를 즐긴다. 중턱이라고는 하지만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다. 정자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 난 산책길이 나타난다. 이 산책길을 따라가면 일제 말기에 구축한 동굴진지가 있다. 산책로는 잠시 아름드리 소나무와 팽나무 그리고 덩굴이 우거진 숲을 지나 서우봉 둘레길로 연결되는데 이 길을 따라 서우봉 정상 부근을 한 바퀴 돌며 한 시간쯤 숲과 주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서우봉은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오름으로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면 제주의 울창한 숲이 압도적인 곳이다. 특히 올레길 표시를 따라 가다 보면 한 순간 숲속으로 풍덩 빠지는 느낌이 든다. 한 여름에는 나뭇잎과 풀잎이 우거져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이 길은 그리 길지는 않지만 한낮에도 으스스할 정도로 어둡고 습도조차 매우 높아 걷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적당한 햇빛 속에서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숲을 벗어나면 함덕 해변은 물론 한라산과 멀리 서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위의 오름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이른다. 말과 염소 등 가축 방목지 상단에 위치한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일품이다.
이곳에서 몇 걸음 더 가면 서우봉 정상이다. 지금까지 서우봉이 가로막고 있던 동쪽 해안 풍경이 펼쳐진다. 서우봉 아래 북촌과 그 너머 동쪽으로 시야가 끝없이 달려간다. 이곳에선 제주도 동쪽 바다의 새벽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우봉은 북쪽을 바라보며 솟아올라 서쪽의 함덕 해변을 잔잔하게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북촌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준다. 새벽에 오르는 이는 일출을 감상하고 저녁에 오른 사람들은 석양을 바라보며 감동한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