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북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중문화 속 북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중문화 속 북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사승인 2020-01-03 07:00:00

“화장품 말입네까? 아랫동네 겁네다.” 상인이 진열대를 덮은 천을 걷어 올리자 한국산 화장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거는 살결물(스킨), 이거는 세척크림(클렌징크림), 요거는 낮크림(낮에 바르는 크림) 저거는 밤크림(밤에 바르는 크림).” 물건을 소개하는 상인의 얼굴이 의기양양하다. 그 앞에 선 북한 군인, 당황한 기색으로 말한다. “다 주시오.” 속옷도 “역시 아랫동네 거”란다. “여기는 비-비안, 여기는 비너쓰, 여기는 버-디가드.” 군인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것도 다 주시오.” 지난달 14일 첫 방송한 tvN 주말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속 장면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북한 전방부대 사택을 배경으로 한다. 제작진은 강원 횡성, 충북 충주 등을 오가며 북한 마을을 꾸며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뉴스에서 그려지던 것과는 달리 드라마 속 북한은 주민들이 맥주를 마시며 생일 파티를 하고 자전거를 발전기 삼아 돌리며 TV를 보는 등 평화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비현실적인 설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북한 주민의 생활을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해맑게 그려졌다는 주장이다. 주인공 현빈과 손예진이 광고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극 중 나타나자 ‘간접광고가 과하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제작진은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현실과 최대한 가깝게 구현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탈북인 곽문안 작가가 보조 작가로 참여했고, 박지은 작가가 북한 전방부대 장교와 전방부대 사택마을에 살았던 군관의 아내 등 수십 명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군의 탈북인들을 취재했다고 한다. ‘간접광고가 과하다’는 지적에는 “실제 장마당에서 인기가 많은 대표적 한국 제품을 보여줬을 뿐”이라며 “간접광고라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가 주연한 영화 ‘백두산’에선 이런 대화가 나온다. “네래 ‘다모’ 봤어? (중략) 내래 마지막 회를 못 봤어. 수용소 있는 동안 궁금해 죽는 줄 알았지 뭐이간.” 북한 요원 리준평(이병헌)이 남한 특전사 EOD 대위 조인창(하정우)를 납치하다시피 태우고 가면서 던진 질문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사콜’(사회주의 콜라)을 나누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북한 군인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강조한 연출이다. 영화를 만든 김병서·이해준 감독은 앞선 언론시사회에서 “(극중 북한이) 안개에 뒤덮여 있지만 삶의 터전”이라면서 “상점에서 나오는 생필품들은 두 사람(하정우·이병헌)의 관계성이 깊어지게 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196~70년대 나온 반공 영화에서 북한군을 흉악하거나 공포스러운 이미지로 그렸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1978년 제작된 반공 만화영화 ‘똘이장군’에선 북한 군인들이 여우, 늑대, 박쥐 등 동물로 묘사됐다. 북한 최고 권력자인 ‘붉은 수령’은 탐욕스러운 느낌의 돼지로 그려졌다. 표적 관객인 어린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반공방첩 의식을 강화시킬 요량이었으리라.

믿기지 않겠지만, 1987년까지만 해도 대종상에는 ‘반공영화상’ 부문이 따로 존재했다. ‘반공영화상’을 수상한 제작사는 외국영화수입쿼터를 받을 수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북한을 한민족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작품은 1990년대부터 나왔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1994), 특수 임무를 띠고 남파된 북한 강경파의 특수요원 이방희와 한국의 정보요원 유중원의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영화 ‘쉬리’(1999) 등이다. 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한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몰래 우정을 쌓는다는 설정으로 영화적 재미를 챙기면서도 역사적 비극까지 짚은 수작이다.

이후 나온 ‘태극기 휘날리며’(2003), ‘웰컴 투 동막골’(2005) 등 남북 간 비극의 역사가 개인에게 드리운 아픔을 조명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었다. 북한군을 ‘빨갱이’가 아닌 이념 갈등에 희생된 인간적인 존재로 본 것이다. 2010년대에는 영화 ‘의형제’(2010),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공조’(2016), ‘강철비’(2017) 등 ‘꽃미남 북한요원’이 등장하는 작품이 대거 쏟아졌다. 북한 군인에 대한 전형적인 묘사를 탈피하려는 노력이다. 

올해도 북한 소재 작품들이 관객과 만난다.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은 곽도원·정우성과 다시 한번 손잡고 ‘정상회담’을 선보인다. 남북미 정상회담 중 북한의 쿠데타로 세 정상이 북의 핵잠수함에 납치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곽도원이 북의 강경파 호위총국장을, 정우성이 남측 대통령을 연기한다. 류승완 감독은 1990년 소말리아 내전 때 고립됐던 남과 북 대사관 공관원들의 생사를 건 탈출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 ‘모가디슈’를 준비 중이다. 배우 조인성‧김윤석‧허준호 등이 캐스팅돼 모로코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사진=tvN ‘사랑의 불시착’ 방송화면·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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