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안양 KGC와 창원 LG의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시즌 4번째 맞대결. 승부를 정규 시간 안에 가리지 못하면서 양 팀은 연장전에 돌입했다. 4쿼터까지 저력을 보이던 KGC는 연장전에 들어가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LG에게 계속해 득점을 내주면서 패색이 짙어졌다.
7점차로 뒤진 연장 종료 1분39초전 압박 수비를 펼치던 이재도가 파울을 범하면서 LG에 자유투를 내줬다. 김승기 KGC 감독은 크게 박수를 치며 벤치에 앉았다. 심판 판정을 향한 불만을 드러내는 제스처였다. 이윽고 KGC는 주전 선수들을 빼고 벤치 멤버들로 라인업을 대거 교체했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승패가 기울었을 때 후보급 선수들을 내보내 경기를 마무리 짓는 장면은 리그를 치르는 동안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상황이 문제였다.
이날 교체로 투입된 선수들은 아예 공격할 의사를 보이지 않은 채 시간을 끌다가 하프라인에서 슛을 대충 던졌다. 남은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결국 KGC는 연장전에서 단 1점도 올리지 못한 채 78-89, 11점차로 졌다.
승부의 추가 기울어졌다지만 김 감독의 판단은 이해하기 어렵다. 남은 시간 1분39초에 9점차로 뒤지고 있다면 역전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재도의 파울이 나오기전까지 KGC는 풀코트 프레스 작전으로 LG의 공격을 봉쇄하려 했다. 하지만 심판 판정 이후 급격하게 KGC의 태도가 바뀌었다.
보통 경기를 포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경우는 경기 종료까지 1분 미만을 남겨둔 상황이거나, 점수차가 10점차 이상 벌어진 상황에서나 나온다. 그런데 김 김독은 일찌감치 승부를 접었다. 스포츠 정신을 위배한 행동이었다.
본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돼 정작 팬들의 마음엔 상처만 준 김 감독이다.
이날 경기는 KGC의 전반기 마지막 홈경기였다. 리그 2위인 KGC는 팀의 중심이 오세근이 빠진 상황 속에서도 상위권 경쟁을 유지하는 선전을 보였다. 이날 경기엔 4018명이나 되는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연장까지 접전을 펼친 KGC였으나, 김 감독의 기행으로 팬들은 기대를 배반 당하고 허탈감과 마주해야했다.
최근 농구계가 강조하는 팬서비스 정신을 무시했다. KBL은 올 시즌 ‘와이드 오픈 KBL’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침체기를 겪었던 프로농구는 올 시즌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인기 반등에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김 감독으로 인해 또 다시 오명을 썼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힘쓰던 KBL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김 감독의 해명도 변명으로만 들린다.
김 감독은 논란의 경기 다음날 “절대 경기를 포기한 게 아니다. 기만이나 조롱할 의도가 없었다. 더 벌어지면 추격하기 어려워질 것 같아 공격을 천천히 시켰다”며 “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심장 시술 성공한지 6개월이 채 안 되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경기 때 약을 가지고 들어간다. 약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다. 흥분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진단이 있었다. 팬들에게 죄송하다.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김 감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심장혈관 시술을 받았다. 지난 시즌 중반에는 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적이 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비해 존재하는 이들이 바로 코치들이다. 코치는 감독의 권한을 대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타팀들은 종종 작전 타임을 코치에게 맡기기도 한다. KGC에도 김승기 감독을 보좌하는 2명의 코치가 있다.
김 감독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코치들에게 경기 마무리를 부탁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의 결정은 코치들의 존재 필요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KBL은 14일 재정위원회를 열어 김 감독에게 한 경기 출장정지와 제재금 1000만원을 부과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KGC 구단에게는 경고를 부과했다.
KBL 관계자는 “이번 논란은 '팬 퍼스트' 정신에 위배된다. KBL의 뜻에 역행하는 행위다. 이에 중징계를 내렸다”며 “추일승 감독이 징계를 받을 당시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날 경우 엄중하게 경고를 내릴 것이라고 했다”고 징계 사유를 설명했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지난 2016~2017시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위를 확정지은 상황에서 주전 선수들을 출전시키지 않아 불성실 경기 논란으로 제재금 500만원 벌금을 냈다.
이어 “또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심판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징계를 내렸다”며 “구단에도 경고 조치를 했다. 김 감독은 KT 코치 시절부터 지금까지 심판 판정 문제만 5차례 발생했다. 소속팀의 책임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징계를 부과했다”고 덧붙였다.
KGC는 유독 논란이 많은 구단이다. 경기 중 과도한 몸싸움이나 언행으로 인해 팬들의 눈살을 수차례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 중심에 김 감독이 있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기기 힘들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