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재밌구만, 재밌어” JTBC ‘이태원 클라쓰’ 속 장대희 회장(유재명)이 봤다면 재밌어했을 풍경이 정치판에 펼쳐졌습니다. 무소속으로 수성을 지역구에 출마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대표가 선거 홍보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박서준) 캐릭터를 패러디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은 ‘홍새로이’.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에 두 캐릭터를 뒤섞은 캐리커처까지 더해진 ‘홍새로이’의 데뷔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홍보물에는 홍 후보와 박새로이 캐릭터와의 공통점을 찾아 연결지은 내용도 담겼죠. 지난 5일 SNS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홍새로이’는 연일 화제를 몰고 다녔습니다.
홍 후보의 술맛을 달게 만들었을 ‘홍새로이’의 인상적인 활약은 고작 3일의 시간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태원 클라쓰’의 원작 웹툰과 드라마를 모두 집필한 조광진 작가와 협의 되지 않은 패러디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죠. 조 작가는 7일 직접 자신의 SNS에 “저작권자인 나는 ‘이태원 클라쓰’가 어떠한 정치적 성향도 띠지 않길 바란다”고 적어 무단 도용 사실을 알렸습니다. 홍 후보 캠프 측에서 만남을 요청했지만 조 작가가 차기작 문제로 거절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홍새로이’ 관련 게시물은 7일 모두 삭제됐습니다.
‘홍새로이’ 외에 여러 후보들이 대중문화 저작물을 허락 없이 이용해 질타를 받았습니다. 서울 동대문구갑 지역구에 출마한 민중당 오준석 후보는 래퍼 마미손이 2018년 발표한 ‘소년점프’ 가사를 바꿔 현수막 등 홍보에 사용에 물의를 빚었습니다. 강원도 원주갑 지역구의 미래통합당 박정하 후보 측은 EBS의 캐릭터 펭수와 비슷한 인형탈을 선거 유세에 동원해 비판을 받았죠. JTBC ‘SKY캐슬’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역시 특정 정당의 홍보물에 모습을 드러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모두 당사자, 혹은 저작권자에게 동의를 받지 않은 무단 도용입니다.
가요와 드라마 같은 대중적인 콘텐츠가 선거 마케팅에 효과적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무단 도용으로 비판받고 법적 처벌을 받아도 주목을 끌 수만 있다면 한 번 해볼 만한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일부 정치인들의 저작권 윤리 부재 이상의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원작자들이 선거에 저작권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금액 문제가 아닐 겁니다. 각자의 콘텐츠엔 물질적인 것 이상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허락할 자유도 있습니다. 몇몇 후보들은 창작자들이 지금껏 지켜온 가치와 그것을 지킬 수 있었던 법적 보호 장치를 너무 쉽게 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대로 경계를 넘는 이들이 자신의 공약을 선거 후에도 지킬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저작물 무단 도용 문제로 아무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는 선거, ‘홍새로이’는 알아도 후보의 공약은 무엇인지 모르는 선거, 개표 결과보다 ‘홍새로이’가 더 기억날 것 같은 선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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