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재난적 상황에서 외상 후 성장할 수 있을까?
#글//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지구적 대유행 사태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재난이다. 일반적인 재난의 경우, 아무리 크고 심각하더라도 눈에 보이고 지역적이며 재난이 지속적이지 않다.
재난이 일어난 직후, 혼란의 시기를 거치면서 재난 상황에서 빛난 영웅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그와 관련된 영웅담을 공유하면서 희망의 불씨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러면 온 세상에서 구원의 손길이 답지하고 회복의 희망이 넘친다. 그러다가 결국 조금씩 잊혀지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세월이 흘러 점차 재건이 이루어지고 아픔이 치유되며 마침내 재난을 극복하게 된다.
재난 초기에 오히려 자살은 줄어들고 공동체는 응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전쟁을 통해 공동체 내부의 결속력이 강화되는 경우가 흔하게 있었다. 그러다가 긴장이 풀리고 냉정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자살이 증가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재난과 관련된 자살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과거의 일반적인 재난과 질과 결이 다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예측이 안 된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재난의 실체도 없고 언제 끝날 지도 모르며 재난의 범위는 전 지구적이다. 치료제와 백신도 없다. 아픈 환자들과 비극의 주인공인 사망자들, 그리고 지쳐서 몸과 마음이 소진되는 보건의료인들만이 눈에 뜨일 뿐이다.
영웅담도 없고 섣불리 희망을 줄 수도 없다. 코로나19는 기본적으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의 문제이지만, 초기에 잘 조절이 되지 않으면 먼저 대량의 급성 감염이 발생하고 이어서 넘치는 환자들로 의료 시스템이 붕괴된다. 이후 민심이 동요하면서 대규모 감염은 사회 체계를 혼란스럽고 위태롭게 만들며 결국 심각한 경제 위기와 심리적 공황을 초래하게 된다.
사람들은 불확실하면 불안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 사태가 언제 마침표를 찍을 지도 모르고, 감염이 되지 않더라고 경제 위기로 직장을 잃고 삶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로 몰릴 수가 있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그야말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감염으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부정적인 인식에 사로잡힐 수가 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는 필수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 먼저 사회의 취약계층에 큰 어려움이 닥친다. 독거노인이나 정신장애인들에게 미치던 도움의 손길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취약계층의 사람들은 지금 비대면 접촉에 의한 사례 관리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황으로 버틸 수 있을 지 위태로운 지경이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실물 내수 경제에 치명타를 안긴다. 사람들이 모여야 차도 타고 밥도 먹고 사업도 진행이 되는데 현재 모든 것들이 멈추었다. 결국 실물 경제의 위기는 40대 50대 가장들에게 큰 위기가 될 것이다. 이들은 일자리를 떠나면 자신들을 지지해줄 사람들도 거의 없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일과 직장을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감염병의 위기는 사회의 취약계층과 사오십대 남성 인구집단의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부터 정부는 이런 점들을 주시하고 대비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는 바꿀 필요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물리적 거리는 두되 비대면 사회적 접촉은 강화’해야 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그의 자살론에서 사회적 통제가 약해지고 혼란스러워지면 아노미적(Anomic) 자살이 많아진다고 하였다. 사회적 규범이 약해져서 개인의 성향을 적절하게 억제하고 개인의 행동 경향을 인도해주지 못하면 사회적 규범의 붕괴가 일어나고 개인이 혼란에 빠진다.
현대 사회의 격변하는 변화의 흐름과 이에 따른 적응의 문제는 사회적 규범의 붕괴와 아노미적 자살을 촉진할 수 있다.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에 추가하여 사회적 불안을 크게 발전시키고 아노미적 자살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취약 계층과 중년 남성의 보호와 더불어 국가사회는 거시적으로 사회적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질서와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
사회적 불안에 함몰되기보다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외상 후 성장’이 되도록 사회적 담론을 생성하고 정서적 위안을 서로 제공하며 문화적 성숙을 보일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으는 것이 한국사회의 당면 과제라고 하겠다. 코로나19는 미증유의 재난이나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도약과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재난적 상황에서 외상 후 성장할 수 있을까?
기선완 교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충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자살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건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거쳐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겸 기획조정실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위원회 이사, 제11대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중앙정신건강사업지원단 위탁 책임자, 인천서구정신건강복지센터장, 제6대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 정신건강 ▲알코올중독 치료 ▲자살예방 분야에 관심이 많다.